매일신문

(야고부)서글픈'스승의 날'

우리에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했듯이, 스승은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스쿨의 교장 버스비 박사 일화는 단적인 사례다. 어느 날 찰스 2세가 학교를 방문했을 때 그는 모자를 쓴 채 교실을 활보했으며, 국왕은 모자를 겨드랑에 끼고 공손히 뒤를 따라 걸었다. 국왕이 돌아갈 때야 그는 학생들이 자신보다 위대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 멀리 거슬러 오늘 것도 없이, 잠시 '스승의 날' 제정 당시로 되돌아가보자. '인격을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기리어 사제의 윤리를 바로잡고, 다음 세대의 주인공들을 교육하는 숭고한 사명을 담당한 선생님들을 존경하는 기품을 길러….' 1964년 5월의 제정 취지문이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들이 이날은 '울고 싶은 날'이라고도 한다.

◇ 사실 '스승의 상(像)'이 날로 이지러지는 느낌이다. 존경과 감사의 마음은 흐트러지고, 그 자리에 불신과 매도가 들어앉는다고 해도 지나치지만은 않을 지경이다. 심지어 촌지 문제 때문에 '암행 감찰'을 하는가 하면, 촌지를 못 가져오게 교문을 지키기도 한다니 처참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풍토에서 교권이 바로서기를 바라는 건 아무래도 무리다.

◇ '스승의 날'은 1973년에 12월 5일로 '국민교육헌장' 선포 날에 통합됐다가 1982년 다시 환원됐었다. 그러나 수난은 그치지 않았다. 5년 전 서울의 초등학교들이 '스승의 날=촌지' 이미지를 벗기 위해 일제히 이날 휴교한 일이 있었으며, 그 이후 방방곡곡 학교마다 '촌지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요즘은 다시 이날을 아예 없애거나 방학 기간인 2월로 옮기자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형편이다.

◇ 역사학자 토인비는 '위대한 나라는 위대한 인물을 많이 배출한 나라'라 했다. 그렇다면 그 가장 큰 몫이 스승에게 있음은 말할 나위조차 없다. 아무튼 교권이 날로 추락해서야 안 될 일이다. 전교생이 4명뿐인 영주 부석초교 남대분교의 한 교사, 하루 종일 애들과 같이 뒹굴기도 한다는 '아빠 선생님' 이야기는 아름답다. 내일은 '스승의 날'이자 '부처님 오신 날'이다. 스승·제자 간 사랑이 넘치는 세상을 기원해본다.

이태수 논설주간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