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읍에는 새재 의원이란 간판을 단 작은 병원이 있다. 원장은 서정후(徐廷厚·81)씨. 전쟁이 나던 195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뒤 고향 문경에서 곧 바로 개업한 서 원장은 군대생활 3년을 제외하곤 한번도 문경을 떠난 적이 없다. 아니 현 자리를 55년째 지키고 있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상주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는 개업과 함께 고향을 떠나지 않고 문경의 환자들을 3대째 상대하다 보니 환자의 집안 병력과 체질을 훤히 꿰뚫을 정도다. 문경 주민의 '가정의(家庭醫)'인 셈.
그래서 위급한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자전거를 타고, 또는 남의 오토바이를 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문경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고 가난한 농촌 환자들에게 진료비는 나중일이었다.
서 원장은 봉사활동에도 남다른 정성을 쏟았고, 최근까지도 젊은이들과 테니스 시합을 즐길 만큼 주민과 잘 어울린다. 아들도 서울에서 의사로 활동 중이다.
일제때 문경등기소 건물이었던 병원은 아직도 원형 그대로다. 진료실 벽면에는 지난 90년 서울대 의대생 모임인 근우회로부터 받은 '졸업 40주년 공로패'만 덩그렇게 걸려 있을 뿐, 야단스런 장식 하나 없다. 서 원장은 1950년 당시 졸업한 53명 가운데 현재까지 시골에서 의원을 운영하는 유일한 인물.
새재의원에서 자녀를 모두 낳으며 50년 넘게 드나들고 있다는 천한봉(72·도예 명장)씨는 "서 원장님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에 주민들이 마음 든든해 한다"며 감사해 했다. 서 원장은 "요즘 생각해 보면 나 자신 능력이 없었던 것 같아. 일찍 도시로 떠났더라면 돈은 많이 벌었겠지"라면서도 "그래도 여기가 좋아"라며 환하게 웃었다.
문경· 장영화기자 yhj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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