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에 나서 이렇게 한 길을 가는 것, 어때요, 보기가 좋지요?"
대구에서 이름난 서예가 혜정(蕙汀) 류영희(63), 영숙(53), 재학(50)씨. 6남매 중 세 명이 한 길을 걷고 있는데다 모두 대한민국 서예대전 특선 이상 입상할 정도로 일가를 이뤘다.
가장 먼저 서예의 길에 들어선 것은 혜정. 친정이 종가라 일년 내내 제사가 이어졌다.
어른들이 지방(紙榜)을 쓰고 남은 먹과 종이가 아까워 낙서하기를 즐기던 것이 본격적인 서예 입문의 계기가 됐다.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인 조수호 선생님을 만난 것이 큰 인연이었어요. 제 평생 스승이 되어주셨을 뿐 아니라 동생들까지 가르쳐 주셨으니까요." 혜정은 집에서도 틈만 나면 붓을 잡았고, 이런 취미는 자연스레 동생들에게도 옮아갔다.
재학씨는 이런 집안 분위기뿐만 아니라 각자 소질도 타고난 것 같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 보니까 할아버지 글씨도 예사롭지 않아요. 할아버지 문집을 들춰보니 글솜씨가 아주 놀라울 정도예요. 대대로 문필력이 이어졌나 봅니다.
"
한 지붕에서 자랐지만 각자 걸어온 길은 조금씩 다르다.
교직에 몸담은 혜정은 서예학원을 내고 후학을 기르면서 현재 대구서예가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영숙씨는 교직과 서예학원을 모두 접고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영남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재학씨는 홍익대 미술사학과 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현재 전업작가로 작품활동에만 주력하고 있다.
혜정과 영숙씨는 서법 중 한글서체를 연마해온 반면 재학씨는 정규 교육과정을 거쳐 이론과 현대서예에 능하다.
끊임없이 서예의 틀을 깨고 허무는 막내 재학씨를 지켜보는 손위 누이들은 늘 흐뭇하기만 하다.
재학씨는 서단(書壇)의 선배이기도 한 누이들이 서예 입문 당시부터 지금까지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고 말한다.
"막내가 현대미술의 모든 재료를 서예에 접목하면서 현대서예를 개척하는 걸 보면 자극이 되기도 하고 같은 서예가로서 뿌듯해요. 이제까지 개인전을 13회나 했는데 자신의 열 세 가지 면을 모두 보여준 전시였어요. 현대 감각에 맞게 자기계발에 힘쓰는 모습을 보면 기특하기도 하고 늘 고맙지요." 막내에 대한 두 누나의 자랑이 그칠 줄을 모른다.
종종 만나 서예와 사회 흐름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는 이들은 '각자 마음을 거들어준다'는 표현으로 형제애를 과시했다.
다른 형제들 역시 서예와는 상관없는 길을 가고 있지만 그래도 묵묵히 곁을 지키며 응원해준다고.
"셋이 같이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해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서로에 대한 의무감과 자극이 큰 힘이 됐던 것 같아요."
튼실한 세 그루의 나무가 닮은 꼴로 자라 큰 숲을 이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모두에겐 행복한 일이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고.' 최세정기자 beacon@imaeoil.com
댓글 많은 뉴스
'험지 경북' 찾은 이재명 "제가 뭘 그리 잘못을…온갖 모함 당해"
"대법원장 탄핵 절차 돌입"…민주 초선들 "사법 쿠데타"
홍준표 "탈당, 당이 나를 버렸기 때문에…잠시 미국 다녀오겠다"
국민의힘, 단일화 추진 기구 구성…"한덕수 측과 협상"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전문]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