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멍서방과 응애곡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바깥으로 돌아야 세상물정을 알지, 너무 집 안에만 처박혀 지내면 숙맥이 되는 법이거든. 옛날 옛적 어느 곳에 한 선비가 살았는데, 밤이나 낮이나 글만 읽는다고 아예 바깥출입을 안 했어. 허구한 날 그저 방 안에 틀어박혀 책만 들여다보고 살았지. 그러다 보니 세상물정을 하나도 몰라. 얼마나 어수룩한지 콩 보리를 못 가리고 마소를 구별 못 하니 말 다 했지 뭐.

그렇게 사는데, 하루는 건넛마을에서 부고가 왔어. 친척이 죽었다고 기별이 왔단 말이야. 그래 문상을 가야 할 텐데, 당최 뭘 어떻게 하는지 알아야 말이지. 걱정이 된 아내가 남편을 붙잡고 하나하나 가르쳤어.

"여보, 건넛마을에 가거든 먼저 강서방네를 찾으세요. 혹시 잊어버리거든 이 종이를 펴 보세요." 하고, 종이에다가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 줬어. 강아지를 보고 강서방을 떠올리라고 말이야.

"그리고, 초상집에 들어가거든 어이곡을 하세요. 혹시 잊어버리거든 이 종이를 펴 보세요." 하고, 종이에다가 어린아이를 그려 줬어. 어린아이를 보고 어이곡을 떠올리라고 말이야. 초상집에 가서 '어이 어이'하고 우는 것이 어이곡이거든.

그렇게 단단히 일러주고서 말을 태워 보냈어. 남편은 말을 타고 꺼떡꺼떡거리면서 건넛마을로 갔지. 그런데 아뿔싸, 개울을 건너다가 신 한 짝을 잃어버렸네. 그래 신을 찾는다고 말에서 내려 개울을 샅샅이 뒤졌어. 찾아도 찾아도 없으니까 개울물을 따라 자꾸자꾸 갔지. 가다가 가다가 못 찾고 하릴없이 돌아와 보니, 아이고 이걸 어째. 그새 말이 저 혼자서 어디론가 가버렸네.

하는 수 없이 털레털레 걸어서 건넛마을로 갔어. 가긴 갔는데 초상집이 무슨 서방넨지 도통 생각이 안 나.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래서 아내가 준 종이를 펴 봤지. 펴 보니 종이에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 놨거든.

'옳지. 강아지는 멍멍 우니까 멍서방네로군.' 하고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었어. "멍서방네 집이 어디요?"

그런 집이 없다고 하면 또 다른 사람을 붙잡고 묻고, 또 묻고, 그러다가 어찌어찌 강서방네 집을 찾아 들어갔어.

들어가긴 했는데, 아이참 무슨 곡을 하라는지 또 잊어버렸네. 도무지 생각이 안 나니 어떻게 해. 하릴없이 또 아내가 준 종이를 펴 봤지. 펴 보니 종이에 어린아이를 떡하니 그려 놨거든.

'옳거니, 어린아이는 응애응애 우니까 응애곡을 하라는 거로군.'

하고서, 상주 앞에 다리를 뻗치고 앉아 응애응애 울었어. 다 큰 어른이 그러니까 그 얼마나 우스워? 그걸 보고 상주가 웃음을 못 참고 쿡쿡 웃었어.

그랬더니 이 선비가 어쨌는 줄 알아? 대뜸 팔을 걷어붙이고 상주한테 달려들면서 하는 말이, "네 이놈, 그렇게 웃는 걸 보니 네가 내 신을 훔쳐갔나 보구나. 어서 내놔라." 하더라네. 하하하.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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