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봐, 구멍이 안 맞잖아? 코팅이 잘못된 거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앞 공정에서 열처리가 잘못됐을 가능성도 있어."
12일 대구 성서공단 (주)삼익정공 작업장. 5명의 '아줌마'가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목소리가 컸다. 다투는 것처럼 보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다투는 게 아니다. 그들은 품질 회의 중이었다. 품질분임조 '구름돌' 모임.
수더분한 겉인상과는 달리 '아줌마'들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해 매주 모임을 한다. 지난해 10월 강원도에서 열린 제30회 전국품질분임조 경진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한 '전국 최강팀'이기도 하다.
◇아줌마의 힘!
산업용 베어링인 리니어 부싱(Liner Bushing)을 생산하는 삼익정공. 이 회사는 현재 5개의 품질분임조를 운영하고 있다. 분임조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하기까지 걸림돌이 더 많았다. "콧구멍만한 회사에서 별 걸 다 하네…." 안팎에서 불평이 쏟아졌다. 그나마 외환위기 때엔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몇몇 분임조가 해체되기까지 했다.
불씨를 되살린 게 바로 구름돌 분임조. 업무와 직접 관계가 적은 등산모임 등을 가지며 꾸준히 활동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았다. 구름돌은 시간이 가면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주 1회의 모임을 반드시 지켜내면서 '쏟아낸 아줌마들의 수다'가 가시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돌아왔다. 조립시간을 20여 초 앞당겨 한 사람이 한 시간 동안 만드는 양이 49.46개에서 74.94개로 늘어났다. 이를 통해 연간 8천400여만 원의 추가수익을 얻는 효과를 거뒀다.
분임조 조장 김억락(49) 조립반장은 "금방에서 가락지 사이즈를 늘리는 막대기를 보고 아이디어를 얻는 등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현장 아이디어 하나가 불량을 줄이고 생산성 향상에 엄청나게 도움이 됐다"고 했다.
대다수가 여성. 평균연령도 52.2세나 된다. 하지만 이들은 20대 못지 않은 정열을 쏟고 있다. 회사 내에서 제안왕으로 통하는 박효숙(52'여)씨. 그는 "분임조 활동을 통해 개선점을 발견, 회사에 건의한 뒤 실제로 바뀌는 것을 보면 너무 재미있다"라고 했다.
회사도 고령 근로자들의 '노익장'에 감동했다. 납기를 눈앞에 두고 있어도 1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시간을 내줬고 활동비도 지급했다. 소문이 번지면서 지난해 대구시가 500만 원의 자금을 지원했다. 이에 질세라 회사도 500만 원을 부담해 품질분임활동 컨설팅을 받았다.
품질보증부 방준원 부장은 "회사에서 분임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우선 만들어 줘야 한다"라며 "당장 눈 앞의 이익을 위해 일을 시키기보다 근로자들에게 자율성을 줘 자발적인 품질 개선활동을 이뤄낼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우쳤다"라고 말했다.
◇품질만이 살 길!
품질경영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역기업의 품질분임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1999년 91개 업체 320개에 불과했던 대구지역 품질분임조는 2003년 199개 업체 870개로 늘어났다. 지난해 현재 분임조는 231개 업체에 모두 918개.(표 1 참조)
품질분임조 경진대회 참가업체도 1998년 외환위기 땐 한 곳도 없었으나 2000년대 이후 품질 경영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2001년 13개, 2002년 17개, 2003년 21개, 지난해 22개 등으로 증가추세다.
하지만 지역에는 섬유업체 중심의 영세 기업들이 많아 타 도시에 비해 아직까지 미흡한 편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품질분임조를 운영하는 업체는 231개로 전체 제조업체(7천60개)의 3.3%에 불과해 서울(1%) 부산(3.3%)을 제외한 전국 16개 시'도 중 가장 낮은 편이다.(표 2 참조)
때문에 대구시는 품질분임조 활성화를 위해 2003년부터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역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이 전문지식과 인력 부족으로 품질분임조를 쉽게 만들지 못하는 점을 타개하겠다는 것. 시는 이를 위해 올해 1억여 원을 투입, 10개 업체를 대상으로 품질경영 전문가 양성교육 및 현장지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시용 대구시 산업지원기계금속과장은 "지역중소기업 대부분이 분임조 활동의 필요성을 알면서도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라며 "앞으로 대구시 재정 지원을 더 늘려 품질분임조 컨설팅 대상을 넓힐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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