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해가 길어지고 날도 따뜻해서인지 큰아이는 제가 퇴근하기가 무섭게 다짜고짜 매달립니다. 무조건 "나가자"고 보채는 거지요. 그러면 하는 수 없이 아이 손에 이끌려 집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는 좋아하며 바로 놀이터로 뛰어갑니다. 미끄럼틀에 올라가 미끄럼을 타고 다시 미끄럼틀로 올라가 다시 타고 하다가 화단 주위에서 나무막대기를 주워 가지고 땅바닥에 긋기도 하고 총 쏘는 시늉도 하면서 무척 재미있어 합니다. 급기야 기분이 고조되면 쪼그렸다가 뛰기를 반복하면서 "신난다"라고 외칩니다.
퇴근해서 피곤한 제가 볼 때는 하나도 재미없어 보이는데 말이죠. 그렇게 단순하고 똑같이 되풀이되는 행동이 뭐가 그리 재미있고 신기한지 '애는 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때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일상에서 작은 일에도 감동할 줄 모르고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무관심과 게으름이 저를 더 늙게 만들고 있다는 회한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잠시일 뿐입니다.
얼마 전에는 제가 사는 아파트 일로 생긴 모임에서 중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시다가 정년 퇴임하신 이웃 어른을 뵈었습니다. 그 분은 모임에 참석한 저와 한 젊은 이웃에게 퇴임 후 자신의 일상에 대해 말씀해 주시더군요. 아침에 일어나 등산하고, 주일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가족이야기를 실어 같은 교회 신도들에게 보일 가족신문을 만들기도 하신다고 했습니다. 퇴직 교사모임에 보일 회보를 만들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 유머를 검색하고 그렇게 만든 회보를 같은 계원들에게 보이고 이 회보로 계원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라고 하시더군요. 옆에 계시는 사모님에게 "요즘 나는 이렇게 재미나게 사는데 마누라가 이런 즐거움을 시기하여 나를 밖으로 내몰려 한다"고 하면서 밉지 않은 애교로 말씀을 마무리하셨습니다.
모든 일상에 대해 감사하고 신기해하고 급기야 그곳에서 즐거움을 얻는다는 것, 그것이 사람 사는 재미일진대 어느 순간부터인지 알 수는 없으나 매사에 피곤해 하고 귀찮아하는 저의 모습을 또다시 느끼게 됐습니다.
그저 아이라서 작은 일상에 마냥 즐거워하는 것이겠지라고 치부하기보다는 저 또한 아이처럼 작은 일상에 즐거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교장 선생님처럼 이웃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작은 즐거움을 줄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면서 산다면 늘 아이와 같이, 청년과 같이 살아갈 수 있겠지요. 제 생각과 움직임을 무관심과 나태함으로 동여매지 않는다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인데….
변호사 jdb2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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