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눈앞에서 그동안 일궈왔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면….
달성공단 내 섬유업체인 (주)SK텍스가 2년 전 바로 그런 일을 당했다.
태풍 매미로 인한 산사태로 공장이 삽시간에 산산조각난 것. 하지만 12일 기자가 다시 찾은 SK텍스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인터뷰 중에도 주문전화는 끊이지 않았고 사무실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주문현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회사 정현분(42) 사장은 폐허가 된 공장을 '부활'시키고 지난 4월에는 인근 연사공장까지 인수했다.
◇차라리 부도를 맞았으면
정 사장은 당시를 회상하면 눈앞이 깜깜했다고 전했다.
무릎까지 찬 진흙과 흙탕물로 기계, 원단 할 것 없이 죄다 못 쓸 정도였다.
대당 4천만 원이 넘는 기계 70여 대의 수리비와 원사 피해액만 1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급박했던지 기숙사에 있던 4명의 직원은 팬티바람으로 옥상으로 대피했다
"그때 파키스탄에 출장 중이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귀국 후 공장을 보니 말문이 턱 막히더군요. 차라리 부도를 맞았으면 낫겠다 할 정도로 대책이 서지 않더라고요."
2000년 이 회사를 세우고 3년 만에 매출액 100억 원을 넘기면서 한창 커나갈 때 이 같은 재난을 당했다.
13년간 섬유기계무역업을 해 벌어온 모든 것을 투자한 회사였는데…. 정 사장은 그때 모든 것이 끝난 줄 알았다.
◇강점을 살려서
"비록 회사는 이 지경이 됐지만 한 번도 포기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아직 젊고 섬유업이라는 것이 잘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 사업이거든요. 그날 이후 오히려 더 열심히 거래처로 뛰어다녔죠."
정 사장은 위기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했듯이 당시 SK텍스는 달성공단에서 유일하게 '풍수해보험'에 가입해 뒀다.
기계 수리비는 보험회사에서 보상했고 5억 원을 대출받아 3개월 만에 공장을 다시 정상화했다.
정 사장은 무역업을 하며 터득한 영업력을 바탕으로 거래처를 늘렸다.
이 회사의 강점은 다양한 거래처와 소량주문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미주, 유럽, 아시아 등 200여 개가 넘는 고정 거래처와 500야드의 소로트도 큰 어려움 없이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과거의 생산방식으로는 이제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힘들었지만 현장에서 소량주문도 소화할 수 있도록 관리자들을 키웠어요. 이런 점이 회사 재기에 큰 몫을 했습니다.
"
◇실력으로 남고 싶다.
정 사장은 '당차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20여 년 전 정 사장이 섬유업계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직접 거래처를 찾아 가면 '여자가 설친다'며 소금을 뿌려댔다고 한다.
이런 점 때문인지 어디서나 자신감 있게 말하고 행동한다.
"보수색이 짙은 지역 섬유업계에서 실력으로 살아남고 싶어요. 사업을 하면서 받은 시련들도 모두 저의 자양분이거든요. 사업능력으로 인정받으면 사회활동도 해 나갈 생각입니다.
"
정 사장은 5년 안에 반드시 이름을 남기는 여성 섬유인이 되고싶다고 당당히 말했다.
사업은 결코 운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며 인터뷰가 끝나는 시간까지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정 사장은 이미 남다른 여성 기업인이었다.
이재교기자 ilmare@imaeil.com사진: 공장 안에서 웃고 있는 정현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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