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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Travel라이프 유럽 배낭여행-(14)그리스 신화속 파리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어린 시절 들었던 너무도 유명한 수수께끼가 생각난다. 정답은 물론 인간이다. 아기 때는 기어다니니까 네 발이고 크면 두발로 서서 다니고 나이가 들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기 때문이다. 수수께끼라는 것은 말장난이 대부분이어서 동음이의어를 잘 살피면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지만 아직 어휘에 익숙지 않은 어린아이들에게 수수께끼만큼 무릎을 탁 치며 통하게 되는 놀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수수께끼에 대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스핑크스를 떠올리지만 이 난제를 해결한 오이디푸스에 대해선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

파리의 시청사를 찾아갔다. 시청 건물 꼭대기에 우뚝 솟아있는 스핑크스에 시선이 꽂혔다. 프랑스의 국기를 에워싼 세 마리의 스핑크스! 그리스 신화 속에서 스핑크스는 여자의 가슴과 얼굴, 사자의 다리와 뱀의 꼬리, 등에는 날개를 단 엽기적인 동물이다.

테바이의 왕 라이오스는 장차 태어날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하게 될 거란 신탁을 듣고 아내 이오카스테가 낳은 아들 오이디푸스를 내다버린다. 후에 자신의 운명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길러준 부모를 친부모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 부모 곁을 떠나게 된다. 도중에 우연히 라이오스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라이오스가 친아버지임을 알지 못한 그는 시비 끝에 라이오스를 죽이고 테바이로 향하며 결국 자신의 운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테바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자신이 낸 수수께기를 못 맞히면 사람을 죽여버리는 서슬 푸른 스핑크스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오이디푸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단 한 명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히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수수께끼의 해답을 주저없이 대답하고 절망한 스핑크스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테바이에 입성한 오이디푸스는 그야말로 영웅이 되고 후에 왕이 되어 그의 친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혼인하게 된다. 뒤늦게 자신이 이오카스테와 라이오스의 아들임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는 절망 끝에 자신의 두 눈을 찌르고 걸인으로 곳곳을 떠돌게 된다. 그리스 신화 중 가장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대목이다.

젊은 시절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를 물리칠 만큼 재치있고 늠름한 청년이었지만 뒤에 일어나는 끔찍한 비극 속에 그의 청년기는 묻혀버린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성의 부모에 대한 애정과 집착, 동성 부모에 대한 적개심을 나타내는 심리적인 용어로 처음으로 오이디푸스와 엘렉트라를 인용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콤플렉스 통해 연상되는 것은 오직 그의 참혹한 비극뿐이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타고난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어쩌면 오이디푸스의 이런 비극은 가족보다 운명을 더 맹신한 아버지 라이오스가 오이디푸스를 버리면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버림받지 않고 라이오스와 이오카스테의 사랑 속에서 자랐더라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이들을 지켜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단숨에 풀어낼 만큼 그는 지혜로운 청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오이디푸스에 의해 좌절하고 목숨을 끊은 스핑크스가 21세기 프랑스 파리의 심장부인 시청사 가장 꼭대기에 부활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화 속 스핑크스는 테바이 길목을 지키며 수수께끼를 맞힐 만큼의 지혜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스핑크스는 테바이의 길목을 차단하고 테바이 사람들의 바깥 출입을 통제했지만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좋지 못한 문물의 유입 또한 철저하게 막아냈던 것이다. 파리 시청사는 프랑스혁명 당시 바스티유를 습격하던 시민들에게 점령당했고 1871년에는 대화재로 인해 건물이 전소되는 불운을 겪은 적이 있다. 새롭게 복원된 시청사의 건물 꼭대기에 프랑스 깃발을 호위하는 스핑크스를 둠으로써 다가올지 모를 어떤 나쁜 기운도 원천 봉쇄하겠다는 파리 시민들의 바람이 담긴 것은 아닐까. 강건해(방송작가)

사진: 1. 파리 곳곳에서는 스핑크스 조각상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사진은 베르사유 앞의 스핑크스 상. 2. 파리시청=파리 시청사는 왠지 특급호텔이나 고급 박물관이 더 어울릴 거 같은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웰 메이드 건축물이다. 3. 파리 시청사 꼭대기에 자리한 스핑크스 상의 모습. 모두 4개의 조각상이 동서남북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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