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북구 칠곡의 '모바일 밸리'가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 구미공장 협력업체들이 집적돼 있는 모바일 밸리에 최근 M&A(인수·합병), 인력 감축 바람이 불면서 대구경제의 보이지 않는 버팀목 역할이 약화하고 있다.
대구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2배에 가까운 연 매출 27조 원. 삼성전자 구미공장이 지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애니콜 신화'를 창조해온 구미-대구 '모바일 밸리'의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바일 단말 개발 경쟁에서 경기 수원에 밀린 것이 첫 번째 이유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패배가 위기국면으로 치달은 데는 '반기업적' 지역사회 분위기와 '행정편의주의적 기업지원 정책'에 대한 실망감이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숨죽인 모바일 밸리?= 대구 북구 칠곡 홈플러스 부근 모바일 밸리에는 30여 개의 모바일 단말 SW개발 업체들이 밀집해 있다. R&D(연구·개발) 인력만 2천500~3천 명에 이르는 대구 최대의 R&D지역이다. 구미-대구 라인에 흩어져 있던 삼성전자 모바일 협력업체들이 2002년부터 대구와 구미 간 전략적 요충지인 대구 칠곡에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모바일 밸리가 형성된 것이다.
삼성 '애니콜'은 모바일 단말 개발 분야에서 '수원(수도권)'과 '구미-대구'를 분리하는 이원화 체제로 경쟁력을 키우는 전략을 채택해왔다. '구미-대구 라인'의 승리는 애니콜 신화로 연결됐고, 대구 칠곡 모바일 밸리는 급속한 양적 팽창을 해왔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 하반기쯤부터. 난데없이 M&A(인수·합병)을 비롯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쳤다.
"너무나 갑작스러웠습니다. 다른 회사와 합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매출의 전부를 대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협력업체로서 원청업체의 명령(?)을 어긴다는 것은 자멸을 의미합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M&A를 승낙할 수밖에 없었던 전 모바일 업체 CEO(최고경영자)는 눈물을 글썽였다.
모바일 밸리에 근무하는 엔지니어 이모씨는 "올해 들어서도 업체마다 50~60명씩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한 CEO는 "GSM(Group Special Mobile:범유럽 통일방식- 국내 모바일 수출의 70% 이상을 차지함) 쪽에서 눈에 띄는 구조조정은 없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아 신입사원 채용을 축소하면서 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수도권과의 경쟁에서 패배?= 전문가들은 모바일 단말기가 점차 고기능 다품종화하면서 수원 중심의 수도권이 '대구-구미'를 앞서가는 것이 모바일 밸리 위기의 본질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양적 급성장 탓에 개발인력을 질적으로 보완할 시간이 모자랐던 우리 지역이 '고급인력의 블랙홀'인 수도권에 역전패를 당한 셈이다. 이 시점이 2004년. 모바일 밸리에 불어닥친 구조조정과 때를 같이한다.
지역업체 관계자들은 또 "지역 모바일업체들은 삼성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반면, 수원 등 수도권 업체들은 (삼성 이외의 다른 수입구조를 인정하는)30% 정도의 자율성을 갖고 있어 훨씬 높은 자생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획기적인 특단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모바일 밸리의 지속적인 축소 구조조정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삼성이 R&D는 전적으로 수원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맡기고, 구미는 단말기 생산에만 특화하는 정책을 펼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대구-구미는 완전히 껍데기만 남게 된다.
◇향후 대책은 없나?= 모바일 업계 사정에 밝은 전문가는 "대구든 구미든 경북 칠곡이든 모바일 밸리를 잇는 어느 곳에라도 삼성의 대규모 R&D센터가 들어섰더라면, 단 한 번의 패배로 이처럼 심각하게 모바일 밸리가 위협받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소지역주의와 관료주의, 행정편의주의가 지역을 망치는 가장 큰 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우리 지역사회는 상생을 위해 협력해야 할 인근 도시들이 제살깎기 경쟁을 벌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국내적으로는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블랙홀과 경쟁하며, 대외적으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산업클러스터와 싸워서 이겨야만 생존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 관계자는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 중 수원에서 개발된 것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생산과 개발이 지리적으로 밀접하게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 삼성전자의 기본 방침이고, 이 때문에 지역의 R&D인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협력업체의 M&A나 인력 감축은 업체 개별적인 상황에서 빚어진 것이지, 모든 것을 삼성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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