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과 멍석, 가마니는 과거 우리 농경사회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적 도구들. 짚신은 고무신과 운동화·구두 등이 나오기 전까지 서민들의 신발로, 멍석은 나락과 보리 등 곡식을 거둬들여 말리는데 요긴히 쓰였다.
가마니 또한 말린 곡식들과 소금·비료를 담아 보관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대부분 오래 전에 우리 곁에서 사라졌던 이들 '골동품'들이 17일 의성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제2회 전국노인전통기능경연대회에서 옛 방식 그대로 재현됐다.
특히 의성은 전국에서 노인비율이 가장 높아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역이어서 짚신을 삼고, 멍석과 가마니를 짜는 행사는 의미를 더했다.
▨짚신
짚신은 서민들이 자급자족해 사용하던 보편적인 신발이었다.
볏짚·삼·싸리·왕골·부들 등을 재료로 삼는데 무명실이나 천 조각을 섞어 삼은 것도 있다.
전국부 경연부문에 참가한 청송군 김배천(73)씨는 "60년 전 할아버지에게 짚신 삼는 법을 배웠는데 해방 전후에는 짚신도 없이 맨발로 다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라며 "청송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에 가려면 세 죽(한 죽 10켤레)을 만들어 허리에 차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올해 두번째 참가하는 고령군 유억식(79), 유영수(74)씨는 "삼으로 삼은 짚신은 '미털이'(미투리), 물을 들여 삼은 짚신은 '꽃신'으로 불렸다"라고 거들었다.
지난해 1등을 차지한 강원도 정선군 전달수(74), 최봉오(71) 대표는 "강원도 어느 마을에는 한 여인이 죽은 남편을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짚신을 만들어 관 속에 넣어 준 눈물겨운 사연도 전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가마니
가마니는 20C 초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이름도 일본어 '가마스'(カマス)를 따 가마니로 부르지만 일제 강점기를 겪은 노인들은 가마니 이야기만 해도 치를 떤다.
당시 집집마다 가마니를 할당, 공출명목으로 강제로 곡식을 거둬갔기 때문.
의성군 읍·면 대표들의 가마니 짜는 모습을 물끄러며 쳐다보던 김봉근(75·의성군 안평면 금곡2리)씨는 "가마니 짜는 모습을 보니 일제 강점기 시절이 절로 생각난다"며 "해방 이후에는 정부가 가마니를 수매해 농촌 대다수 주민들이 가마니로 의식주를 해결했다"라고 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마니 경연부문에서 우승한 의성군 안계면 장사구(75)씨 부부는 "해방 이후 낮에는 열 장, 밤에는 서너 장 등 하루에 열서너 장을 짜 시장에 내다팔았는데 일제 치하에서는 닷새동안 오십 장을 일본놈들에게 공출당한 적이 있다"라고 했다.
장씨의 부인 우기매(여·70)씨는 "53년 전 시집온 뒤 시어른과 남편, 시동생이 가마니 짜는 동안 길쌈을 했었다"며 "남편의 가마니 짜는 솜씨는 의성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멍석
"야들아, 비 온다.
멍석 말아라." 굵은 빗줄기가 후두두 떨어지기 시작하면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은 급한 마음에 애들부터 부른다.
놀기에 바쁜 아이들은 딴청을 부리다 결국 꿀밤 한 대씩을 얻어 맞는다.
농촌에서 자란 중장년층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추억이 아닐까.
멍석은 대체로 길이 3m, 폭 1.8m 정도의 직사각형이었지만, 둥근형의 멍석도 더러 있었고 맷돌질할 때만 바닥에 깐 맷방석도 있었다.
세로로 다소 굵은 새끼줄, 가로로 짚을 엮어 나가던 멍석짜기는 능숙한 솜씨라도 한 장을 완성하는데 족히 일주일은 걸렸다.
경남 거창군 이재백(71), 이진도(78) 대표는 "멍석은 곡식을 말리는 유일한 도구여서 멍석 숫자로 가세(家勢)를 가늠하기도 했다"며 "사람을 둘둘 말아 몽둥이로 때리는 '멍석말이'도 자주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제주도 남제주군 양경팔(88)씨는 "잔칫집이나 상가에는 마당과 골목 어귀에 어김없이 멍석이 깔렸고 전통 혼례도 멍석 위에서 치러졌다"며 "흔하디 흔하던 멍석이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정도로 사라져 아쉽다"고 말했다.
▨이제는 관광상품으로
"한국의 전통 농경문화와 풍물놀이는 한국을 떠나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
이날 의성종합운동장에는 미 8군 장병들과 가족 70여 명도 참여해 우리 전통 농경문화와 풍물놀이 등에 흠뻑 취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날 미군장병들을 안내한 박재경(60) 미8군 가정상담소장은 "미국인들이 짚신을 비롯한 짚공예품과 지게 등 소품을 많이 구입했으며 새끼꼬기 체험마당에서는 '원더풀'을 연발했다"며 "옥산 풍물놀이에 대해서도 흥을 돋우는 훌륭한 음악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라고 전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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