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형과의 사랑

남자들의 환상이 만든 영혼없는 애정행위

이 세상에 바가지 긁지 않는 와이프가 있을까. 또 '입안의 혀' 같이 구는 여자친구는 어떻고? 늘 화사한 옷에 얼굴 가득 웃음을 띠며 상냥한 말로 남자를 맞는 여자. 정녕 꿈일까. 수컷들의 바람일 뿐일까.

'스텝포드 와이프'는 모르긴 몰라도 이런 수컷들의 바람에서 나온 영화일 것이다. 한때 방송사 CEO로 잘 나가던 아내 조안나(니콜 키드먼). 시청률의 노예로 자극적인 방송을 만들던 그녀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된다. 남편 월터(메튜 브로데릭)와 한적한 마을 스텝포드에서 새 생활을 시작한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너무나 완벽한 이 마을, 그리고 사람들. 그러나 어딘가 이상하다. 이 마을의 아내들은 너무나 순종적이다. 아름답고, 요리도 잘하고, 집안일도 척척 혼자서 알아서 하고, 아이들에게 신경질을 내지도 않는다.

그 뒤에는 남편들이 있다. 마을의 모든 남편들이 동참해 아내들을 모두 기계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바가지로부터 해방된 완벽한 가정(?)에서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다.이뿐 아니다. 수족 같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아내는 밤에도 멀티플레이어로서 기능을 다한다. 입력된 갖가지 체위와 교성, 현란한 테크닉으로 남편들을 녹여 놓는다.

인형과의 사랑. 영혼이 없기에 사랑이라고 붙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에서 곧잘 등장하는 것은 수컷들의 바람이 그만큼 큰 때문일 것이다.

'마네킨'(1987년)은 좀 더 솔직하다. 조각가 지망생인 주인공은 변변치 못한 20대 남자이다. 그래서 실연을 당했고, 제대로 된 직장도 못 얻는다. 어느 날 백화점의 마네킨을 제작하는 일을 맡는다. 심혈을 기울여 작품을 만든다. 늘씬한 팔등신에 우수에 젖은 눈, 빨간 입술, 아담한 가슴..... 그가 원하는 여인의 모든 것을 담는다.

완성된 그 순간 놀랄 일이 벌어진다. 마네킨이 인간으로 변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마네킨이 되지만, 그에게만 인간으로 살아난다.

마이클 고틀립 감독의 '마네킨'은 세계적인 선풍을 몰고 왔다. 1991년에는 속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인형과의 사랑'은 늘 '마네킨'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표정 없는 인형의 섬뜩함으로 인해 어두운 호러의 그림자가 깃들기도 한다.

'러브 오브제'(Love Object 2003년)는 인형과 사랑을 나누는 한 남자의 위험한 게임이 소름끼치게 한다. 주인공 케네스는 외모도 준수하고 직장도 번듯하다. 그러나 그는 연애를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섹스인형 니키를 주문한다.

니키의 존재로 인해 케네스는 자신감을 갖는다. 그래서 비서인 리타와 가까워진다. 그러나 이상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난다. 마치 인형인 니키가 살아서 질투하는 것 같다. 케네스는 니키를 없애기로 한다.

인형과의 사랑은 자위하듯 해치우는 일회용품 같은 사랑이다. 바람둥이보다는 현실 부적응자나 사이코에 더 어울리는 사랑이다. 그래서 피가 흐르지 않는 마네킨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 섬뜩함과 차가움이 먼저 떠올려진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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