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는 대구·경북의 산과 들에 어떤 변화를 줬을까.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팀과 대구지역 일대를 취재한 결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식물 지도가 바뀌고 있었다.
◇대구권 남쪽
청도 풍각면 현리 인근 야산. 팔조령에서 1km쯤 떨어진 해발 105m 지점이다.
16일 찾은 이곳은 엄지손가락보다 굵은 녹색 덩굴 식물이 상수리나무와 아카시아나무를 휘감은 채 '정글'을 이루고 있었다.
길이 80m에 폭 50m의 비탈 전체가 이 덩굴식물로 뒤덮인 것.
덩굴식물은 '마삭줄'. 대구보다 훨씬 따뜻한 한반도 최남단과 제주 및 도서 등지가 '고향'인 난온대 상록활엽수종이다.
마삭줄 군락은 완연한 초록빛에 작은 꽃망울도 터뜨려 식생 상태가 좋았다.
지난 2003년 일대를 처음 발견하고 1년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김종원 교수는 "이 정도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다.
도서지역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최대 규모"라며 "대구 일대가 냉온대 낙엽활엽수림에서 난온대 상록활엽수림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여주는 자연의 큐사인"이라고 했다.
마삭줄 군락은 적어도 25~30년 전부터 자생한 것으로 보인다.
주민 김오룡(55)씨는 "어릴 때부터 늘 봐 왔지만 마삭줄인지는 몰랐다"며 "겨울철에도 늘 새파랗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초기 마삭줄 중 가장 추위에 강한 종자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자체 라이프 사이클을 완성하고 적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구 온난화가 몰고 온 생태 변화는 산뿐만이 아니었다.
인근 흑석리 들판에서도 뚜렷한 징후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구·경북에서 유일한, 한반도 최북단의 차나무밭이 그 주인공이다.
전영재(74)씨는 "15년 전부터 100평 규모의 차나무밭을 경작하고 있다"며 "처음 심을 때는 잘 자랄지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매년 질 좋은 차를 만들 정도로 생육 상태가 좋다"고 했다.
첫 해에는 차나무 모두가 얼어 죽었지만 이듬해 6월부터 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것. 지난해부터는 좀 더 높은 응달에도 씨를 뿌리기 시작했다.
이젠 주변 기후에 완전히 적응해 낮은 곳보다 잘 자란다는 것.
전씨는 "남쪽 차나무밭과 다른 점은 1주일 늦게 찻잎을 따고 얼어 죽는 잎이 좀 더 많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대구권 북쪽
식물 사회의 온난화 징후는 점점 북상하고 있었다.
칠곡 가산산성 부근의 팔공산 해발 750m 지점. 이 일대는 대구 평지보다 600m나 높고 연평균기온은 3.36℃ 낮다.
하지만, 취재팀은 이곳에서도 융단처럼 생긴 잎, 고구마같은 뿌리를 가진 난온대 상록 초본과 마주쳤다.
약용식물로 잘 알려져 있는 '맥문동'이 등산길을 따라 자생하고 있는 것. 맥문동도 따뜻한 남쪽이 '고향'이지만 지구 온난화와 이른 봄에도 온난한 오목지형으로 남쪽 비탈면을 따라 광범위한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갓바위 부근 해발 391m에서도 올 해 올라 온 것으로 보이는 차나무 싹을 확인했다.
등산객이 캔 흔적만 남아 있지만 김 교수팀이 2003년 60~70cm까지 자란 차나무 군락을 발견했던 곳이다.
김 교수는 "냉온대 낙엽활엽수림을 대표하는 팔공산에 맥문동, 차나무가 자생한다는 사실은 대구·경북 온난화 진행 속도가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대구 도심
대구 수성구 범어산 해발 150m 지역에서는 전남, 경남 해안이나 제주, 진도에서 주로 자라는 가시나무 군락이 발견됐다.
가시나무를 공원 조경수로 심기 시작하면서 열매를 먹은 새들이 인근 야산에 산포한 것으로 추정되며 8, 9년생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군락 형태는 범어산 발견이 유일하다.
건들바위 부근 경사면에는 20~30년생의 졸가시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 역시 한국·일본 ·중국 남쪽에 분포하는 난온대 상록활엽수종.
김 교수는 "현장 탐사 결과, 대구·경북 식물의 온난화 징후는 이미 197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며 "온난화에 따른 대구·경북 식물 사회의 변화를 10~20년 이상 장기 모니터링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하고 이를 녹지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탐사팀=이종규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기자 all4you@imaeil.com 의성·이희대기자 청도·정창구 기자
도움말 계명대 한국생태계관리연구소사진: 사진:청도 풍각면의 한 야산에 정글처럼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마삭줄. 한반도 최남단과 제주 등 도서 지역에 주로 자생하는 식물로 도서 지역을 제외하면 한반도 최대 규모다. 이채근기자 minch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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