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 에세이-토종닭 세 마리 만 원

팔공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산 지가 5년이 넘었다. 공기 좋고 경관 좋은 그곳에서 너는 늙지도 말고 건강하게 살아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은 친구도 있었다. 정말 그러고 싶은 곳이다.

이곳에 와서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넓은 농장을 혼자서 가꾸고 사는 할아버지의 농장엔 없는 것이 없다. 튼튼하게 자라는 수많은 복숭아나무 밭 사이사이 보리가 패고, 각종 푸성귀가 자라고, 집 주위에 늘어선 감나무, 대추나무는 작고 아름다운 꽃들을 끝없이 피운다. 온종일 밭에서 일하는 할아버지는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로 올 봄도 처음 올라온 땅두릅을 한아름 뜯어와 먹어보라 하신다. 내가 할아버지에게 해드릴 수 있는 건 고작 몇 병의 음료수를 사다 드리거나 밑반찬 몇 가지를 만들어 드릴 뿐인데….

여름엔 잘 익은 복숭아를, 가을이면 처음 딴 홍씨를 가져다 주신다. 그런 할아버지는 집 주변에 얼기설기 개집을 지어 40여 마리의 개를 키운다. 흑염소와 토끼도 키우고 더러 오리도 키운다. 그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면 할아버지의 낡은 트럭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을 거두어가야 하는데,-할아버지는 면사무소에서 발행한 잔반처리 허가증을 갖고 있다-처음엔 식당 주인들이 허름한 옷차림의 이 할아버지를 몹시 홀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땐가 할아버지가 다리가 많이 불편해 보름여 동안 음식쓰레기를 거두지 못하게 되자 잔반을 거두어가던 집집마다 고약하게 썩은 음식쓰레기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었다.

그후 어떤 식당 주인의 제안으로 매달 할아버지에게 얼마 간의 사례비를 드리게 되었는데 늘 예쁘게 꽃단장하는 식당 사모님들은 그 돈이 아까워 종업원들을 닦달해 음식쓰레기를 산에다 파묻기도 했다. 음식쓰레기뿐 아니라 폐식용유까지 산 속에 묻는다고 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남에게 홀대받을 분이 아니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열심히 농장을 가꾸고 동물들을 키워 사람들이 찾아오면 헐값에도 내어주신다. "왜 이렇게 고생만 하세요?"라고 물으면 "그냥 일하는 게 좋아서 그러지 뭐!"라며 웃으신다. 할아버지가 갖고 있는 금싸라기 농장은 수천 평, 참으로 부자인데도….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내게 재미있는 공생관계를 들려주셨다. 할아버지에게 60여 마리의 닭이 있는데 이걸 처분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세 마리에 만원씩 판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개들이 닭 알을 다 먹어버린다고 했다. 개들이 어떻게 닭 알을 먹어버릴 수가 있느냐고 했더니 놓아 기르는 이 토종닭들이 알을 낳을 때면 꼭 개집으로 들어가 알을 낳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조용하게 웅크리고 있던 개는 닭이 알을 낳자마자 따뜻한 날계란을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는데 조금 있다 껍질만 퉤퉤 뱉어 놓는다고 한다. 그뿐이 아니다. 개집 바깥에 놓아 먹이는 강아지들도 닭들이 알을 낳을 때쯤이면 용케 알고 쪼로록 달려가 핥아먹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60여 마리의 닭을 키우면서도 따뜻한 날달걀 하나 먹어보기 힘들다고 했다. 밭에서 바쁘게 돌아와 어쩌다 알을 찾아내도 개 오물과 닭 오물이 묻어 먹지도 못한다고 했다. 성품이 착한 할아버지이지만 도저히 화가 나서 짐승들을 키우지 못하겠는데 그래도 개를 처분하는 것보다는 닭을 처분하는 게 쉽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눈앞에 있는 닭을 잡아먹는 것보다 매일 따뜻한 알을 먹는 게 개들에겐 유익할는지 모른다. 닭은 개에게 물어뜯기는 것보다는 알을 낳아 바치는 게 유리할 것이다. 동물들의 이 같은 이상한 공생관계를 직접 듣고나니 세상만사가 함께 더불어 이뤄지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날 나는 토종닭 세 마리를 단돈 만원에 사서 푹 고아 먹었다.

정유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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