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걸리면 '여론재판' 비판없고 비난만

인터넷 여론은 상상 이상의 가공할 파워를 자랑한다. 댓글은 인터넷에서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사회적 여론을 선도할 정도로 성장한 저널리즘으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사실 확인도 않은 마녀사냥식 언어폭력, 비판이 쏙 빠진 비난만 퍼붓는 못말리는 e권력으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다.최근 일어난 주요 사건을 통해 댓글의 두 얼굴을 들춰봤다.

◇곤욕 치른 도지사

경북도와 이의근 경북도지사는 지난 달 12일부터 일주일 동안 네티즌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독도 분쟁으로 반일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는 시점에서 터져 나온 일련의 사건 때문.

지난 달 12일 도가 독도 분쟁의 진원지인 시마네현 지사 등 일본 지자체장 10명에게 동북아자치단체연합 상설 사무소 개소 참석 초청장을 전달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국내에 알려지자 네티즌들의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이날 오후와 야간 도 홈페이지에는 경북도와 도지사를 비난하는 글과 댓글 수천개가 오른 것.

네티즌들의 반발이 걷잡을 수 없자 도는 홈페이지 안내창을 통해 "사무소 개소 참가 초청장은 독도 분쟁이 일어나기 훨씬 전인 지난 1월에 이미 보낸 것이며 독도 분쟁과는 별개 사안"이라는 해명의 글을 띄웠지만 네티즌의 반발은 식을 줄 몰랐다. 결국 도 상설 사무소 개설을 무기 연기해서야 네티즌들의 분노는 겨우 가라 앉았다.

이 과정에서 감정적인 악플도 들끓었다. 도를 넘어선 네티즌은 도지사를 '매국노', '쪽바리' 등으로 악의에 찬 비난으로 깎아내려 버렸다. 도 관계자는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다. 당시 러시아의 자치단체로부턴 한.일 관계 때문에 러시아 등 타 지자체와의 신뢰는 어떻게 할 것이냐는 항의도 받았다"며 "국민적 감정 못지 않게 국가간 외교 신의도 중요했다"고 밝혔다.

◇신생아 학대

대구의 모 산부인과 간호조무사들이 '신생아 학대'사진을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 등에 올린 사실이 이달 초 네티즌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이 사진들은 모세혈관처럼 퍼져 있는 네트워크를 타고 순식간에 유포됐다.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마다 신생아 학대를 비판하는 댓글이 하루 이틀 사이에 수만건이 올랐고, 대구에 이어 서울과 경기의 병원에서도 신생아를 괴롭히는 사진들이 추가 공개되는 등 파문이 확산됐다.이후 경찰 수사를 촉구하는 댓글이 들불처럼 번져 간호조무사 3명은 지난 9일 자신이 일하는 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를 학대한 혐의로 형사 입건됐다.

이 사건의 경우 사회에 대한 감시와 비판 기능을 하는 댓글 저널리즘을 여실히 보여준 케이스다. 네티즌들의 댓글 파워가 없었으면 사건은 결코 여론화되지 못한 채 또다른 신생아 학대를 낳았을 것.

하지만 이 사건 역시 악플을 남겼다. 피의자의 인권도 당연히 보호받을 권리가 있지만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더욱이 사건과 관계 없는 사람들까지 그 신상이 낱낱이 공개되는 등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아야 했던 것.

사건 과정에서 간호조무사 3명의 실명과 사진 등이 인터넷에 공개됐고, 일부는 남자 친구의 사진까지 댓글, 퍼가기 등을 통해 순식간에 유포됐다. 또 이들이 근무하거나 했던 병원의 이름 역시 '댓글 파워'를 피해가지 못했다. 지난 20일 대구 동부경찰서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여전히 간호조무사 3명의 이름이 공개돼 있었고, 한 네티즌은 간호조무사들의 사진을 갖고 있다며 자신의 홈피 주소까지 알리고 있었다.

◇성역은 없다.

일반인들도 인터넷에 올랐다 하면 사회적 매장까지 각오해야 한다. 지난 3월 떠든다고 지적하는 동료 학우를 때린 서울대 도서관 폭행 사건은 인터넷 포털인 네이버에만 관련 댓글이 4만개가 넘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가해 학생 커플은 명문대 깡패커플로 돌변했고, 주요 인터넷 사이트 등에는 커플의 얼굴, 이름, 재학 중인 대학교와 학과, 학번, 미니 홈피 및 블로그 주소, 출신 고교 등 신상이 낱낱이 공개했다. 가해자의 잘못을 넘어 인권까지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 네티즌들로부터 '온라인 집단폭행'을 당한 남학생은 지난 달 결국 휴학했다.

또 지금 사이버 공간에는 최근 자살한 한 20대 여성의 사연으로 인해 사건 관련자의 신원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여성의 홈페이지에는 이 여성과 결혼을 전제로 만났던 남자가 임신중이던 여성에게 헤어지자고 요구해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연이 적혀 있고, 여성 애도와 남자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역시 이 과정에서 남자의 사진과 연락처 등이 외부에 알려졌고, 남자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는 것.

대구지방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사이버 명예훼손 수사 건수는 모두 388건에 이르고 있으며 이 중 인식공격, 언어폭력, 허위 사실 유포 등으로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는 128건(구속 6, 불구속 122)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탐사팀 이종규 기자 jongku@imaeil.com 이상준 기자 all4you@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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