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가족 공감대 만들기

황룡사지를 걸으며

실크로드 일부 구간을 여행하며 거칠고 광활한 고비사막을 지나간 적이 있다. 오아시스와 신기루를 보았고 대낮에도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혹독한 황사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지나며 인간과 자연에 대해 많은 상념과 사색에 잠겨 보았다. 생각이 깊어지고 정신이 단련됨을 느낄 수 있었다.

딸아이가 중3 때 유난히 시험을 못 친 날이었다. 그날 밤 10시 경에 엄마와 아빠와 함께 경주 황룡사지에 산책을 가자고 하니 순순히 따라 나섰다. 11시 경에 도착했다. 그믐밤이어서 사방이 깜깜했다. 하늘에서는 별이 펑펑 쏟아져 내렸고 청량한 바람은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세 식구는 금당터 금동삼존장륙상 대좌 앞에 한참 서 있었고, 신라 삼보의 하나인 9층목탑터에서는 64개의 초석 위를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차례로 하나씩 밟아 보기도 했다. 조국 백제가 망하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신라의 탑을 지어야 했던 아비지의 고뇌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했다. 한참을 같이 돌아다니다가 각자가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서 삼십분씩 혼자 산책을 하자고 제의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가져간 간식을 먹고 집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딸에게 "아빠는 황룡사지를 달밤이나 별밤에 걷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그 넓은 폐허를 걸으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기거나 머리속에서 절과 탑을 지었다 허물어 보는 것이 너무도 즐겁다"라고 말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아이는 그냥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마음이 심란할 때는 황룡사지에 가자고 했다. 일 년에 서너 차례씩 함께 찾아갔다. 갈 때마다 우리는 각자 떨어져서 혼자 산책하는 경우가 많았다. 돌아오는 길에도 특별한 말은 없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갈 때보다는 돌아올 때 아이의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그 때마다 우리 가까이 고비 사막과 같은 광활한 황무지는 없지만 황룡사지와 같은 폐허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고2 어느 가을날 밤 우리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황룡사지를 다녀왔다. 그로부터 이틀 뒤 딸아이가 등굣길에 "아빠, 저도 이제 황룡사지를 걸으며 상상으로 절과 탑을 지어보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보는 것이 너무 좋아요"라고 했다. 딸이 나의 생각에 진정으로 공감하게 되어서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다. 고3 때도 두 번 갔다.

지난해 아이의 수능시험이 끝나고 나서 어느날 아침 아이를 태워주며 "아빠는 너를 뒷바라지 하는 3년이 너무 행복했다. 먼 훗날 이 때가 그리워질 수도 있겠지. 이제 너희들을 다 키웠으니 너희들이 아이를 낳으면 도와줄게. 너희들 아이는 어떻게 키워줄까?"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질문이 끝남과 동시에 "오빠와 저처럼 키워 주세요"라고 답했다. 이 말 역시 나를 무척 기쁘게 했다. 부모의 수고에 감사하고 부모의 교육 방식을 인정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전 딸아이가 기숙사에 들어가는 길에 전화를 했다. 자기는 잘 지내고 있다며 아빠는 별일 없느냐고 물었다. 요즈음 할 일이 너무 많아 힘이 든다면서 반농담조로 네가 곁에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빠, 다음 금요일 오후에 내려갈게요. 우리 같이 황룡사지에 가요."

윤일현(송원학원진학지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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