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빠가 읽어주는 전래동화-보리쌀 한 줌

옛날에 옛날에 참 가난하게 사는 선비가 있었어. 너무 가난한 탓에 과거 보러 갈 노자도 없어서, 이 사람이 다른 선비들 과거 길에 슬그머니 끼어서 따라갔어. 무거운 짐이나 져 주고 잔심부름이나 해 주면서 얹혀 간 거지. 눈칫밥을 얻어먹으면서 말이야.

그렇게 가서 과거를 봤는데, 다른 선비들은 다 떨어지고 이 사람 혼자서 턱 급제를 했네. 이래 놓으니 다른 선비들 은근히 마음보가 뒤틀리거든. 번듯하게 노자를 쓰고 온 저희들은 다 떨어지고 염치없이 빈대 붙어 온 사람이 급제를 했으니 말이야. 그래서, 집으로 돌아갈 때 생뚱맞은 꾀를 하나 냈어. 어떤 꾀를 냈는고 하니, 이 가난한 선비한테 보리쌀 한 줌을 줘서 내쫓은 거야. 말로는 그럴 듯하게,

"자네는 이걸 노자로 해서 어서 빨리 고향으로 가 급제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우리야 바쁠 것도 없으니 경치 구경이나 하면서 쉬엄쉬엄 감세."

하지만, 속셈은 그게 아니지. 보리쌀 한 줌 가지고는 노자가 어림없을 테니 이참에 아주 단단히 곯려 주자고 마음먹은 게지.

이 가난한 선비는 그런 속셈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러면 내가 먼저 갈 테니 자네들은 천천히 오게나."

하고서, 보리쌀 한 줌을 가지고 바쁘게 갔어. 다른 선비들은,

'흥, 보리쌀 한 줌으로 제가 얼마나 버티나 보자.'

하고 코웃음을 쳐 가며 느긋하게 그 뒤를 따라갔지.

가다가 어느 마을에 닿았어. 그러고 보니 앞서 간 가난한 선비 일이 궁금해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었지.

"여보시오, 어제 이리로 가난한 선비 한 사람 지나가지 않았소?"

"예, 바로 그런 손님이 우리 마을에 묵었습지요."

"그래, 밥이나 빌어먹고 갔소?"

"빌어먹다니요. 그분이 글쎄 보리쌀 한 줌을 내놓으면서 밥을 지어 달라지 않겠어요?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입쌀을 추렴해서 흰밥을 잘 지어 드렸습지요."

선비들은 속으로 첫날은 운이 좋았던 게고, 다음날은 오지게 망신당했을 거라 생각하고 길을 갔어. 다음날 어느 마을에 닿아서 또 물어 봤지.

"여보시오, 어제 이리로 가난한 선비 한 사람 지나가지 않았소?"

"예, 바로 그런 손님이 우리 마을에 묵었습지요."

"그래, 밥이나 빌어먹고 갔소?"

"빌어먹다니요. 그분이 글쎄 보리쌀 한 줌을 내놓으면서 밥을 지어 달라지 않겠어요? 그래서 온 마을 사람들이 입쌀과 고기를 추렴해서 흰밥과 고깃국을 잘 대접해 드렸습지요."

선비들은 속으로 둘째날까지도 운이 좋았던 게고, 다음날은 틀림없이 망신을 당했겠지 하면서 또 길을 갔어. 그런데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닿는 마을마다 물어 봐도 다 한 입에서 나온 것 같이 잘 대접해서 보냈다고 그러지 뭐야. 보리쌀 한 줌을 내놓으면서 밥을 지어 달래니 가엾은 마음이 들어 너도나도 추렴을 해서 아주 잘 대접을 해 보냈다는 거야.

이렇게 해서 보리쌀 한 줌 가진 가난한 선비는 내내 대접을 잘 받아가며 아무 탈 없이 고향에 돌아갔다는 이야기야. 곯려 주려던 선비들이 도로 머쓱하게 됐지 뭐.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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