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독서신문-20년 전을 회상하며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나는 어느덧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 되었다. 물론 나의 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시고, 철부지 내 여동생 여운이는 어엿한 숙녀로 자랐다.

조숙했던 내가 세상에 대해 어렴풋이 깨달았던 아홉 살 그 날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렀고, 이제 나는 예전 산동네 꼭대기 집이 아닌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아파트촌에 살고 있지만 언제나 그 곳은 내 마음 속 고향으로 남아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기억해보면 우림이는 항상 도도하게 고개를 들고 다녔던 아이었다. 나는 그런 우림이에게 때론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그 아이를 다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림이는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오랜 동안 병원 신세를 질 만큼 아파 결국 서울 큰 병원으로 옮겨 가야만 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고, 우림이는 고등학교 무렵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건강해져 돌아온 우림이는 우리 어머니에게 색안경을 선물하면서 나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여민아, 너는 의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너희 어머니를 생각해서 말이야. 만약 네가 하지 않는다면 내가 될 거야! 의사는 예전에 내가 병원에 있을 때부터 가진 꿈이었지만, 또 너희 어머니는 곧 우리 어머니나 마찬가지 아니겠니?"

참 우림이는 예나 지금이나 어찌나 성격도 좋고, 마음씨도 곱고 생각이 깊은지 내가 봐도 기특하다는 생각이 다 든다. 이렇게 다시 친해진 우리는 그 후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어려울 때 서로 도우면서 남매처럼 또 친구처럼 지내며 서로를 더 잘 아는 좋은 친구로 지냈다. 대학을 졸업하고 우림이는 자신의 소원이었던 의사가 되었고,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보며 결심했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료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되었다. 실력 있는 의사가 된 우림이는 우리 어머니의 눈을 훌륭하게 고쳐주었고 그 해 가을 우리는 결혼을 하였다.

결혼 후 우리는 계속 서로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 어렵고 힘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찾아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 일은 생각 외로 참 힘들었다. 하지만 지쳐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새벽마다 남의 집 물동이를 채워주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 그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몸소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세상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지만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은 항상 적다는 것, 그리고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그런 상황은 늘 존재한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작은 봉사단체를 세우는 꿈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있다.

올 해는 나의 귀여운 아들이 아홉 살이 되는 해이다. 오늘 나는 아내와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옛날 아홉 살의 나에게 인생을 알게 했던 그 산꼭대기 작은 동네를 거닐고 있다.

추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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