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기로에 선 글쓰기

글쓰기가 교육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 글쓰기를 강조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기 시작한 바람은 열풍을 넘어 광풍으로 발전할 기세를 보인다. 이는 2008학년도 대입 전형부터 논술과 구술면접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대학들의 발표와 맞닿아 있다. 고교 졸업생의 80% 가까이가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 현실에서 대학입시가 전체 교육에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크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씁쓸해할 일만은 아니다. 연유야 어찌됐든 교육에서 필수불가결하면서도 다소 소외받아온 글쓰기라는 중요한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입시제도 변화로 촉발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확산시켜 가느냐이다.

2002학년도, 2005학년도 입시의 실패는 좋은 거울이다. 특기와 소질을 최우선 요건으로 내걸었던 2002학년도 입시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한 2005학년도 입시나 결국엔 수능시험이라는 한줄 세우기 전체 고사에 기대고 말았다.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시험과 선발이라는 현실적 조건을 만족시키는 독립 변수로는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부작용은 자못 심각하다. 많은 30대와 40대들이 대학에 가기 위해 수학 문제를 풀고 영어 단어를 외우다 수학 영어라면 진저리를 내는 지경에 놓였듯, 2000년대 학번들은 특기와 소질, 선택이라는 단어 자체에 혐오감을 느끼는 실정이다. 글쓰기 역시 그리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수학과 영어에 대한 혐오보다 글쓰기에 대한 혐오가 삶에 훨씬 치명적이라는 점에서 보면 더욱 심각하다.

어떻게 해야 글쓰기를 대학입시의 독립 변수로 만들 수 있을까.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할 수 있을까. 최근 일어난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 논란을 들여다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찬성하는 이들은 일기 쓰기 자체의 의미뿐만 아니라 교사, 학부모와 의사소통하는 창구로서의 역할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반대하는 이들은 일기를 숙제로 만들고 검사함으로써 가식과 억지를 강요한다는 부정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양쪽 다 맞는 얘기다. 찬성 쪽은 글쓰기의 즐거움이 잘 쓰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 세상과 교류하는 데 있다는 측면에서 고개가 끄덕여진다. 반대 쪽은 아무리 재미있고 좋아하는 과목이라도 숙제가 되고 시험이 되는 순간 괴로움의 근원이 돼 버리는 현실을 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이렇게 볼 때 2008학년도 대입제도가 불붙인 글쓰기의 미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세상과의 의사소통이라는 본연의 즐거움이 아니라 숙제와 시험이라는 괴로움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시금 입시의 실패를 겪지 않기 위해 학교 교육이 고심해야 할 부분이다.

우연히 찾은 한 초등학생의 블로그에서 곱씹을 만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내 맘대로 쓸 수 있고,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라는 즐거움. 블로깅을 하면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알았다. 숙제로 냈다면 이렇게 많이 쓴다는 걸 꿈도 못 꾸었을 것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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