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李太洙 칼럼-가짜·거짓말이 날개 다는 사회

'가짜를 진짜 강요' 구조 단죄를/ 윗물부터 맑아야 미래 밝아져

얼마 전의 일이다.

한 음식점에 들어가면서 신발장 옆 꽃병에 꽂혀 앙증스럽게 눈길을 끄는 한 송이 장미를 보았다.

마음 속으로 "참 잘도 만들었군"하면서 만져보았다.

그런데 가짜 꽃이 아니었다.

순간, 진짜 꽃을 가짜로 본 자신이 부끄러웠다.

진짜를 보면서도 '진짜로 보이는 가짜'로 여긴 자신이 기가 막히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많은 가짜들이 진짜처럼 행세하거나 심지어 가짜들이 진짜를 밀어내는 세상이기 때문에 생긴 불신증(不信症)이라는 '자기 위안'을 해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참 한심하구나"라는 자괴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지금 세상은 사실 혼란스럽기 이를 데 없다.

때로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진짜로 보이고, 진짜가 가짜들에 떠밀려 가짜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아 가짜와 진짜를 바로 보기 어려울 지경이지 않은가. 이런 징후가 '나'뿐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혼란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섣불리 말할 수는 없으나, 혹시 우리 사회 구조가 요즘 가짜를 진짜로 믿도록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 건 아닐는지…. 나아가 이런 풍토가 진짜를 가짜처럼 변두리로 밀어내고, 가짜들이 진짜들의 자리를 버젓이 차지해, '진짜 같은 가짜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지나 않은지 모르겠다.

우려되는 점은 불행하게도 그 이상이라는 데까지도 미치게 된다. 한 학자가 우려했듯이, 문제의 심각성은 '가짜의 횡포' 그 자체도 그렇지만, 그 횡포를 빈번히 겪은 결과 우리의 '사고방식마저 왜곡되고 있지 않은가'라는 우려에 닿게 되기도 한다. 말하자면, 가짜에 대한 경계심이 정상적 자위책을 능가해 이상심리(異常心理)로까지 발전할까 걱정된다는 얘기다.

우리 속담에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곧이듣지 않는다'는 말이 있고, '팥을 콩이라 해도 곧이듣는다'는 말도 있다.

이 두 속담은 반대되는 말 같지만 기실은 비슷한 말이다. 전자는 불신증의 소산이며, 후자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남의 말을 쉽게 믿는 사람을 조롱하고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 두 속담을 두고 생각해보면, 후자에 마음이 더 깊이 가닿는 건 '왜'일까. 전자는 우리 사회가 거짓말에 심각하게 오염돼 '구제 불능'이라는 절망감을 안고 있다. 후자의 경우는 '그런 사람은 바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에도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틈을 보여주고 있다고 봐야 한다.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하나 절대로 속지 않겠다는 마음보다 더러는 속아주는 마음이 훨씬 인간적임도 말할 필요가 없을 게다.

이미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나 근래의 신문 지상에는 '날개를 다는 거짓말들이'이 어지러운 느낌이다. 어느 국회의원의 '독립군 딸' 논란이 그렇고, '유전(油田) 의혹'의 전 건교부 차관의 '오리발 내밀기'가 그렇다.

어느 국회의원의 '병역 기피용 손가락 자르기' 논란과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변명도 마찬가지 사례다.

거슬러 오른다면 그 끝이 안 보일 지경이지만, 이 세 가지 경우만 하더라도 듣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정도이지 않은가

이 일련의 의혹 행진은 그 진실의 뿌리가 과연 어디에 있는지는 쉽게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들의 말이 '긁어 부스럼 만들기'나 '거짓 새끼치기'로 가지 않고, '말 아끼기나 입 다물기'로만 갔더라도 의혹을 덜 사고, '가짜 행세'라는 누명(?)에서 조금은 더 자유스러워 질 수 있지 않았을까.

거짓말은 무겁다고 한다.

아무리 힘이 센 장사라도 억눌린 양심을 견디지 못한다는 말이 나온 것도 그 때문이다.

이는 그야말로 너무나 단순한 진리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지도층 인사들이 행여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면 정말 안 될 일이다.

법정에서도 거짓말을 하는 '위증'이 크게 늘고 있다지만, 윗물부터 맑아야 아랫물도 그렇게 될 수 있을 터이다.

아무튼 가짜는 가짜이고, 진짜는 진짜다.

가짜가 진짜처럼 보이고, 그 때문에 진짜가 가짜에 밀리는 사회는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진짜를 보면서도 '진짜로 보이는 가짜'로 여기는 불신증도 치유돼야겠지만, 가짜이면서 '진짜를 밀어내는 가짜 진짜'여서는 더욱 안 된다.

나아가 행여 우리 사회 구조가 가짜를 진짜로 믿도록 강요하고 있다면 기필코 달라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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