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형되면 민주화운동 일어날 것."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사형되기 며칠전 교도소로 면회온 가족 등과의 대화를 담은 옥중 면담록이 25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23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옥중 면담록에 따르면 김씨는 사형선고를 받은 1980년 5월20일부터 사형이 집행된 24일까지 육군 교도소에 면회 온 가족들과 변호사 등에게 죽음을 맞기까지의 심경을 담담히 털어 놓았다.
20일 오전 10시45분 여동생 등 친척들의 방문을 받은 김재규는 심취한 불교에 대해 이야기한뒤 "나는 하늘의 명령에 따라 많은 원수를 만들었다. 10·26일 혁명은 도덕성을 가지고 빠질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내 혁명을 수행하면서 민주회복을 시켰으니 그런 관점에서 내 정신을 이해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 대통령을 죽였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자유를 회복시킨 것은 진리를 회복시킨 것이니 죽을 때에는 '대한민국만세, 자유민주주의 만세, 10·26 혁명 만세만은 부르고 가자. 지금 우리는 가지만 10·26혁명만은 언젠가 빛을 보게 마련이다는 말을 부하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김씨는 여동생에게 "혁명가의 가족답게 집에 돌아갈 때도 음악을 틀어놓고 즐겁게 가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했다.형집행 바로 전날인 23일 오전 10시25분 김재규는 친지들에게 사형집행이 가까워진 것을 예감한 듯 "군복에 계급장을 붙이고 나무로 묘비를 세우라"는 등 장례 절차에 대해 상세한 유언을 남겼다.
그는 "내가 사형되면 국민 감정이 돌아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고 내 죽음이 결정적 모멘트가 될 것"이라고 했다.김씨는 5월 24일 새벽 4시40분 서울구치소로 이송돼 군인과 검찰 등 40여명의 관계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최후를 맞았다.
그는 종교 의식 제의를 거부하고 "할 말 없다"는 최후 진술을 들려 준 뒤 손을 합장하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염주를 손에 꼭 쥐고 마지막 길을 떠난 것으로 면담록은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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