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가 어려워 힘들어진 가계 살림으로 속앓이를 하는 부부들이 적잖을 듯싶다. 없는 살림에 더욱 허리띠를 동여매야 한다면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더할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박병준(45)'이영실(39)씨 부부는 아껴 쓰고 줄여 쓰는 것이 하나도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짠돌이', '짠순이'로 살아온 것이 흐뭇하단다. 경기가 어렵다고 억지로 '짠돌이', '짠순이'가 되어야 하는 고통(?)은 없으니 말이다.
윤선생영어교실 복현교육센터를 함께 운영하는 이 부부는 굳이 '짠돌이'처럼 살지 않아도 될 법 한데 생활신조가 '짠돌이'로 사는 것이란다. '쓸데없는 곳에 낭비하지 않고 생활 속에서 절약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 하지만 꼭 필요할 때 쓸 줄 알며, 내가 아끼는 것 때문에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 부부는 이런 '짠돌이'가 되고 싶단다.
사무실도 재활용품으로 꾸민 이 부부는 외식을 하는 법이 없다. 함께 일하며 늘 붙어다니는 이 부부는 다행히 집이 사무실과 가까워 점심도 집에 가서 먹는다.
남편 박씨의 한 달 용돈은 7만 원. 얼마 전까지만 해도 4만∼5만 원 수준이었는데 인상된 것이 이 정도다. 취미생활 겸 건강을 위해 새벽에 테니스를 치는 데 드는 월 회비가 2만 원. 나머지 5만 원은 품위 유지비다. 아내 이씨가 자신을 위해 쓰는 돈은 한 달에 4만 원. 일주일에 한 번씩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데 거금 1만 원을 투자한다. 매주 때를 미니 한 달에 4만 원이 나가는 셈이다.
"4만 원으로 한 달을 정말 풍족하게 사는 거죠. 사람을 많이 상대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적지 않은데 몸이 찌뿌드드하고 피곤할 때 목욕탕에서 때를 밀면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요."
'짠돌이'라는 '다음(daum)' 카페에 '짠순이되야징'이라는 별명으로 글을 올리고 있는 이씨는 화장품도 거의 안 산다. 피부가 지성이어서 여름에는 스킨도 안 발라도 되고 겨울에는 로션을 발라야 하니 1년에 로션값 3만∼4만 원이면 충분하다. 유일하게 쓰는 색조 화장품인 루주는 선물 받은 것들로 쓴다고.
은영(12'복현초교 6년), 수상(7) 남매도 절약하는 부모를 닮아서인지 남이 입던 헌옷을 물려 입어도 오히려 더 편하고 좋다고 말한다. 새로 사 입는 옷들도 할인점에서 5천 원, 비싸야 1만 원 정도 하는 티셔츠, 바지들이다.
"시장 길거리에 파는 속옷, 양말은 얼마나 싼데요. 양말 한 켤레에 500원, 팬티 1장에 1천 원하면 충분해요. 값이 싸도 튼튼해서 1년 이상 쓰지요."
다른 주부들과 달리 이씨는 집 꾸미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단다. 침대도 안 쓰고, 커튼은 돈만 낭비하지 굳이 달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단다.
"집안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안 늘어놓고 최대한 넓고 편리하게 사는 게 좋아요. 액자나 장식품도 괜히 돈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도 사본 적이 없어요."
이씨는 보통 주부들은 반짇고리 상자도 사지만 자신은 못 쓰는 종이상자에 바늘, 실 등을 그냥 넣어둔다고 했다. 서랍장 칸막이도 안 사고 남는 종이상자를 그대로 넣어 칸막이로 사용한다. 딸 은영이도 못 쓰는 종이상자를 재활용해 서랍 칸막이도 만들고 책 정리함도 척척 만드는 솜씨가 엄마 못지 않다.
"여행 다니는 걸 무지 좋아해요. 하지만 나들이 간다고 돈 때문에 부담스러워할 일은 전혀 없어요." 이 부부는 바닷가에서 값싸게 여름 휴가를 보내는 방법을 귀띔해 줬다.
"아침밥은 집에서 먹고 주먹밥이나 유부초밥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서 나가요. 시어머니가 장애인으로 등록돼 있어 자동차 가스비 2만 원만 있으면 포항이나 감포에 가서 해수욕하고 모래장난 하며 실컷 놀 수 있지요."
이 부부는 바닷물이 생각보다 깨끗해서 아이들이 아토피가 조금 있지만 해수욕 후 물로 씻지 않고 그대로 자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목욕탕 값이나 마찬가지인 해수욕장 샤워비, 숙박비 등을 아끼기 위해 이 부부는 차 안에서 젖은 수영복을 갈아입고 바로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피곤해 잠든 아이들은 다음날 아침 집에서 샤워한다. 그리곤 또 도시락을 싸서 다시 바다로 떠나는 것.
"부산 송정해수욕장은 값싸게 해수욕을 즐기기에 참 좋아요. 해수욕장 파라솔이 한 개 5천 원, 고무튜브도 한 개 5천∼1만 원이나 하는데 단 몇 시간 쓰자고 하루 이용요금을 다 내고 빌리기가 아깝잖아요. 조금만 지켜보고 있으면 고무튜브 등을 반납하지 않고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요. 바로 그 자리로 가서 파라솔, 고무튜브를 이용하면 공짜로 실컷 놀 수 있는 거죠."
이 부부는 '짠돌이' 생활을 하지만 꼭 써야 할 돈은 아끼지 않는단다. 아이들에게 좋은 해산물을 풍족히 먹이고 설, 추석 명절에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에게 드릴 선물도 꼭 챙긴다.
"아파트 화단 잡초들 사이에서 민들레 잎을 따서 나물을 무쳐 먹으며 절약하시던 시어머니를 저도 모르게 닮게 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게 너무 싫었는데…. 어느새 절약이 몸에 밴 생활이 됐네요."
김영수기자 stel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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