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찔레꽃

장미의 계절이다. 담장에 기대어 줄줄이 빨간 꽃망울을 터뜨리는 넝쿨장미가 길손들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준다.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깔깔깔 웃음소리가 터져나올 듯 밝고 명랑해 보인다.

오월은 찔레의 계절이기도 하다. 볕바른 산기슭에서, 한적한 소롯길 길섶에서, 무덤가에서,밭둑에서 하얗게 피어나고 있다. 드물게 도시의 뜨락으로 이사온 찔레와 마주치면 그 옆에서 잠시 다리쉼을 하고 싶다. 같은 장미과지만 분위기는 영판 다르다. 장미가 세련된 도회적 분위기라면 찔레는 한없이 소박하고 정겨운 흙내음으로 다가온다. 흑백사진 속 엄마얼굴 같기도 하고 멀리 시집간 누부(누나)의 젊은 시절 모습 같기도 하다.

애처로운 전설 때문일까, 찔레꽃은 고향, 가족,그리움 등의 이미지로 향수(鄕愁)를 자극한다. 막걸리 한 사발에 흘러나오는 국민트로트 '찔레꽃'이 그렇고, '엄마 일 가는 길에 하얀 찔레꽃~'으로 시작되는 이연실의 노래는 아련한 슬픔으로 가슴에 젖어든다. 구비구비 절절하게 휘감아 부르는 장사익의 노래는 또 어떤가.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쉘 실버스타인의 '주기만 하는 나무'처럼 찔레도 제 자신을 남김없이 나눠준다. 지난 시절의 아이들은 아지랑이 아롱거리는 긴 봄날,달짝지근한 찔레순을 따먹으며 고픈 배를 달랬다.열매는 새들의 배를 불려주고, 뿌리와 열매는 한약재로 쓰인다. 올해도 찔레는 지천으로 피어나고 있다. 혹 산과 들에서 하얀 찔레꽃을 만나거든 사랑스런 눈빛을 보내주시기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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