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살고 싶습니다"

식도협착증 고통받는 이보현(21)씨

화장실 창 틈으로 한 줄기 햇빛이 스며들었다. 화장실 한 켠에 쪼그려 앉았다. 청소하려고 산 염산이 눈에 들어왔고, 종이컵 가득 염산을 들이켰다. 잠시만 이 세상으로부터 도망갔다가 돌아오고 싶었을 뿐, 죽고 싶진 않았다. 돌봐야 할 동생이 있었고, 우리를 버린 엄마도 버젓이 살아있었기에.

나는 길 가에 버려진 깡통같이 살았다. 학벌은 말할 것도 없고, 엄마 없이 산다는 그 자체가 이 사회에선 범죄나 마찬가지였다. 이 사회는 우리 자매가 살아가기엔 너무 매정했다.

작년 설을 쇤 직후 아빠는 우리 곁을 떠났다. 한 쪽 폐도 없이 살던 아빠의 나머지 한 쪽 폐마저 암세포가 먹어버렸다고 했다. 아빠는 연탄장수였다. 죽기 직전 아빠가 남긴 한마디. '보현아, 열심히 살아야 한다. 너희들을 정말 사랑했단다.' 유언처럼 남긴 이 한마디가 아직 귓가를 맴돈다. 당신의 온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면서도 잡고 있던 두 손만은 놓지 않으려 애썼던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아빠는 손톱에 낀 새까만 때자국 한번 지워보지 못했다. 엄마도 생활이 지긋지긋했었나 보다. 동생이 갓 돌을 지났을 때 큰 물통에 동생을 씻기다 말고 엄마는 말없이 집을 나갔다.

내 학력은 중졸이 전부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통학버스비, 급식비, 각종 준비물들이 형편에 아랑 곳없이 손을 벌려왔다. 당시 아빠는 봉고차로 공공근로자들을 실어나르는 일을 했는데 단돈 몇 만원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돈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도 교실에 남으라고 하더니 공납금 얘기 뿐이었다.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17살 때 서울에서 미용을 배웠다. 한달에 15만원.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었기에 주유소, 편의점, 호프집 닥치는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기자 아저씨, 얼마나 서러운 지 모르죠. 많이 못배웠다는 것이? 다니던 백화점에서 어느 날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한 직후 전 그만둬야했어요. 그 손가락질과 시선들을 감당하기엔 너무 차가웠고 매정했어요."

염산을 마신 몸이 오죽할까. 화학성 식도염에 급성 위 점막 병변, 위 궤양에 십이지장 염을 앓고 있는 이보현(21·여)씨. 식도는 다 타서 불과 미음 한 모금 삼킬 만큼 좁아졌다. 연신 기침을 해댔다. 눈물도 마르지 않았다. 동생 정현(18·여)이는 중학교를 그만 두었다.

다행히 기아대책 경북지역본부에서 매달 몇 만원씩 후원해준다. 또 기초생활수급대상 2급으로 동사무소에서 20만원이 매달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저는 우리 엄마가 너무 밉거든요. 근데 병원이란 곳이 정말 이상해요. 왜 지금 엄마 목소리가 이렇게나 듣고 싶은지, 아니 '엄마'라고 단 한 번만 불러봤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우릴 버렸는데 왜 보고 싶어질까요?"

보현씨는 포항 북구 한 임대아파트에 동생 정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정현이 역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넉달치 월세 40만원이 밀려서 그나마 발을 뻗고 잠을 청하던 임대아파트에서도 곧 쫓겨날 처지다. 지금껏 숨겨왔던 정현이는 얼마 전 언니에게 힘겹게 이 얘기를 꺼냈다.

당장 갚아야 할 병원비도 없는 형편에 보현씨는 석달 안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식도가 막힌다. 남은 삶을 보장할 수 없다. 삶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그 짐을 잠시나마 벗어버리고자 염산을 마셨던 보현씨는 이제 삶의 끈을 다시 부여잡으려 한다. 퇴원한 뒤 검정고시를 준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싶다고 했다. 배움이 짧아서 받았던 서러움이 너무 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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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 식도협착증으로 3개월내에 수술을 받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처지에 놓인 보현씨는 먼저 간 아빠 얘기를 하다 눈물을 흘렸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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