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잠이 깨었다.
창으로 달빛이 흘러든다.
보름달이다.
어느 새 보름이 되었나?
저쪽 산마루에 달의 몸이 반쯤 걸친 모양이 보인다.
날이 밝으려나 보다.
달을 향해 날아가는 물고기 한 마리가 보인다.
지느러미를 날개처럼 흔들며 날아가는 물고기 한 마리, 그 물고기 이름이 뭐였더라. 아, 덴드로키루스 비오셀라투스. 산호초 가지에 집을 짓고 사는 물고기. 그러니까, 산호는 동물이면서도 팔·다리며 발이 없는, 그래서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붙박인 운명의 불운한 존재, 기껏 이 세상에 딱딱해진 팔이며 가지를 뻗는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 가지덕분에 산호는 자기도 모르게 좋은 일을 많이 하는 모양이다.
인터넷을 막 뒤져 본다.
"쓰나미도 잠재운 산호초의 힘"이라는 제목이 보인다.
그 기사의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해안 지방을 휩쓸어 2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양에 인접한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소말리아 등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도 산호초가 잘 보존된 몰디브는 피해가 적었다.
산호초가 쓰나미의 위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
그 기사는 산호초가 가진 기능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말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을 눈에 띄게 한다.
'산호초는 단지 보기에 좋은 것 이상의 중요성이 있다.
만약 산호초가 없었다면 열대 바다 생물의 다양성은 현재 수준에 훨씬 못 미쳤을 것이다.
탁 트인 바다에는 생물들이 숨을 만한 곳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산호초에는 물고기를 비롯한 해양생물들이 포식자를 피해 숨을 만한 곳이 많다.
그러므로 산호초는 해양생물 중의 25%가 서식하고 있는 훌륭한 자연사 박물관이다.
…'
그렇구나. 숨을 곳이 있어야 하는구나. 모든 생물은 숨을 곳, 글쎄 그것이 집? 집은 일차적으로 자기를 숨기는 곳?
' 산호초는 해저 지진이나 태풍으로 생긴 엄청난 파도나 강한 해류로부터 육지를 보호해준다.
만약 산호초 대신 인공적으로 방파제를 세운다면, 1㎞당 100억 원 이상의 공사비가 들 것이다, 한 편 산호는 대기 중의 이상화탄소 농도를 낮춰 지구 온난화를 경감시키는 데도 일조를 한다.
… 산호는 이처럼 자연재해 방어벽이나 지구환경 문제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
그런데 이런 밤 산호는 사랑을 한다고 한다.
보름이 막 지난 밤이 D데이라고 한다.
발 없는 산호들이 일제히 알과 정자를 바다 위를 향하여 쏘아 올리는 것이다.
하긴 산호들이 이런 장관을 달밤에 연출하는 것은 산호로서는 심히 당연한 일이다.
움직일 수 없이 바닥에 붙어 있는 산호로서는 '사랑하는 산호'에게 다가갈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산호들이 같은 시간에 산란과 방정을 하면 알이 수정될 확률도 높아지고, 다른 동물들에게 먹힐 확률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아무튼 달 밝은 밤, 파도 사이로 작은 공처럼 생긴 알이 마치 풍선이 날리듯 떠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리라. 산호네 바다는 온통 하얀 풍선들로 인해 축제 같으리라. 그 속에서 파도는 산호의 '없는 발'을 끝없이 간질어 줄게고. 파도는 말하자면 갈 수 없는 애인에게 가게 하는 사랑의 배 같은 것일 테니까.
산호는 이렇듯 우리 생활에 다양한 혜택을 주지만, 지금 많이 훼손되고 있다.
산호초가 있는 109개 국 가운데 93개 나라에서는 이미 산호초가 인간에 의해 훼손된 상태이다.
연안개발에 따른 토사나 오염물질 유입, 폭발물을 사용한 어로활동, 무분별한 관광, 천적 생물의 증가 등으로.
그런데 우리나라 연안 해역에서는 아쉽게도 산호초를 만드는 돌산호는 볼 수가 없다.
날개 달린 물고기 비오셀라투스가 달을 향해 날아간다.
비오셀라투스는 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나를 돌아보며 소리친다.
"자연은 쓸데없는 일을 하나도 하지 않아. 다 이유가 있다고."강은교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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