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형욱 실종사건' 개요와 쟁점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 위원장 오충일 목사)는 2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을 중심으로 지난 113일 동안 중점적으로 조사해온 7개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를 중간 발표했다.

김형욱 실종사건은 진실위가 이날 '중간발표 이유'를 통해 "이와 관련된 구구한 억측과 근거없는 낭설이 난무, 혼란을 주고 있어 중간보고를 하게 됐다고 밝힌대로 실종 및 살해 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제기돼왔다.

김대중 납치(1973년), 정인숙 피살(1970년)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3대 미스터리로 꼽히는 김형욱 사건의 개요와 주요 쟁점, 또 진실위 중간발표에도 불구, 풀리지 않는 의혹들을 함께 정리해본다.

◇사건 개요

김형욱 전 부장(당시 54세)은 10·26 3주 전인 79년 10월 7일 오후 7시 프랑스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 실종됐다.

역대 중앙정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63.7∼69.10)간 막강한 자리를 지키다 전격 경질된 김형욱은 73년 4월 15일 대만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후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이던 미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표적이 됐다.

그는 실종 전 항공편으로 뉴욕에서 파리에 도착, 특급호텔인 리츠호텔에 머물다 2류 호텔인 웨스트앤드 호텔로 옮긴 뒤 카지노에 들렀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박 정권은 김형욱이 제3공화국과 유신정권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출간하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78년 11월께 윤일균 당시 중정 차장(해외담당), 이용운 전해군제독(작고) 등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밀사로 미국에 보내 150만달러 제공, 여권보장 등 구체적인 조건을 놓고 막후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위가 밝힌 사건 개요

김형욱 중정부장은 6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이 3선 개헌의 1등 공신인 자신을 해임하고 73년 3월 유정회 국회의원 명단에서도 제외하자 4월 미국에 망명했으며 77년 6월 뉴욕 타임스 회견 및 미국 하원의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 박 대통령을 강력히 비난한 데 이어 박 대통령 정부의 치부를 고발하는 회고록 출간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 정부는 77년 6월 민병권 무임소 장관을 대통령 특사로 미국에 파견, 김형욱을 설득·회유하는 한편, 최규하 총리 주재로 김형욱 대책회의를 3차례 개최한데 이어 김형욱을 실질적으로 압박하기 위해 그 해 12월 "외국정부에 대해 도피처 또는 보호를 요청한 자"와 "외국에서 귀국하지 아니하는 자로서 죄상이 현저히 중(重)한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반국가 행위자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다.

박정희 정부는 회고록 출판을 막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김형욱에 대한 회유와 협박을 시도했으며, 이 과정에서 김형욱은 79년 10월 1일 단신으로 프랑스 파리에 도착, 10월 7일 저녁 파리 시내 카지노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실종됐다.

그동안 각종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국제 범죄조직 또는 정치적 보복에 의한 프랑스 현지 살해, 국내 압송·살해 등 각종 의혹들이 유포돼 왔고, 그 배후에는 당시 박정희 정부와 그 예하에 있는 중정이 이를 주도하거나 개입하였을 것이라는 추측만이 여러 시나리오로 제기돼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김재규 당시 중정부장은 79년 9월말 이전 중정 프랑스 거점장이었던 이상열 공사에게 김형욱의 살해를 지시했으며, 이 공사는 79년 10월 1일께 귀국, 김재규 부장에게 김형욱 살해 계획을 보고한 후 현지 중정 연수생 2명 등에게 김형욱 살해 관련 임무를 부여했다.

이후 신현진(이하 가명)과 후배 이만수는 제3국인 친구 2명에게 10만 달러 제공조건으로 사건을 청부, 파리 교외에서 살해했다.

◇주요 쟁점 진실위의 중간발표 내용은 26년간 베일에 싸인 채 온갖 억측만 난무해 온 이 사건의 배후 인물(김재규)과 사건 사주, 연루, 가담자들의 증언을 일부 청취해 사건 개요에 대한 윤곽을 어느 정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여전히풀리지 않는 의문점들도 적지 않다.

우선 실종 및 살해 경위 등에 대한 논란이다.

김형욱 사건은 4반세기가 지나도록 △파리에서 중앙정보부원에게 살해돼 무거운 추에 매달려 세느강에 던져졌다 △비밀리에 청와대로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됐다는 등의 구구한 억측만 자아낼 뿐 미스터리로 남아 있으며 그동안 실종 또는 사망 경위, 배후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 왔다.

이런 가운데 중앙정보부 특수비선공작원 출신이라고 주장하는 이모씨가 지난 달'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1979년 10월 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에서김 전 중정부장을 납치해 파리 외곽 양계장에서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고 주장해, 김 전 부장 실종을 둘러싼 논란을 한층 가열시켰다.

그러나 최근 MBC 방송팀과 시사저널 취재기자와 함께 파리를 방문, '현장 검증' 까지 마치고 온 이모씨의 주장은 이는 진실위 발표 내용과 살해 수법, 사체 처리 등과 관련,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쟁점으로는 김형욱을 납치, 살해한 배후 등 납치 실체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해 언론들은 지금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권력과 함께 현지 마피아 등 폭력집단이나 북한 등을 대상으로 제기돼왔다

그러나 범행 주체를 둘러싼 논란의 경우 카지노와 관련된 폭력집단이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했거나 북한이 관련됐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이며, 당시 여러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국가권력의 개입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견해가 우세한 편이다.

또 국가권력이 자행한 것이라면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그 배후인지 그와 충성경쟁을 벌이던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 소행인 지 여부도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중정 공작팀 관련자들의 진술해 주로 의존해 사건 관련 발표를 한 진실위측의 발표 내용이 어느 정도 진실에 가까운 것인지 이를 입증해 주는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는 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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