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사극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우리 조상들은 여름을 어찌 났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곤 한다. 에어컨이나 선풍기 대신 부채 하나로 무더위를 쫓을 수 있었을까. 체면을 중시하는 마당에 옷을 훌러덩 벗을 수도 없었을 터인데. 예전의 여름이 지금보다 덥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
해답은 우리 조상들의 주거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집인 한옥에는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지혜들이 골고루 숨어 있는 것. 숨은 지혜을 찾기 위해 지난주 경북 영주시 순흥면에 위치한 선비촌을 찾았다.
소백산 비로봉이 올려다보이는 1천평의 대지에 터를 잡은 선비촌은 주위 자연경관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한 느낌이었다. 여기에 한옥의 탁월한 피서 능력까지 더했다니.
한옥이 내세우는 여름나기 비법은 집을 이루는 재료에 있다. 황토와 한지가 그것. 최근 건강의 대명사로 각광받고 있는 황토는 온도 조절기능까지 갖춘 기특한 흙이다.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에너지를 환경 여건에 따라 보관하고 방출하는 온도 기능이 있어 여름이 시원할 수밖에 없다.
또 습기와 열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눈·비가 올 때는 수분을 흡수하고, 건조할 때는 습기를 내뿜어 집안의 습도를 조절하니 항시 쾌적한 환경을 선물한다.
한지도 지혜 덩어리이다. 현미경으로 보면 미세한 구멍이 수없이 뚫려있는 한지는 공기 순환에 딱인 것. 그래서 한지는 여름철에 유리하다. 문을 열어놓지 않더라도 시원한 바깥 공기를 들일 수 있고, 방안의 데워진 탁한 공기를 내뿜을 수 있기 때문. 내부와 외부를 완전히 차단하는 개념인 서양의 창과 달리 자연친화성은 물론 무더위를 해결하는 우리 조상들의 과학적 사고의 응집체인 것이다.
한옥은 또 이웃나라의 전통 가옥이나 양옥과 달리 높은 기단이다. 기단이 높으면 지표로부터 올라오는 열과 습기를 막아 한여름에도 시원하고 쾌적한 환경이 된다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석홍 선비촌 문예연구원은 중국이나 일본의 전통 가옥과는 달리 한옥만이 가지는 깊은 처마도 과학적인 피서법으로 꼽았다.
"한옥의 깊은 처마는 차양 역할을 해 마루나 방으로 들어오는 직사광선을 효과적으로 막아줍니다. 때문에 한여름에는 그늘진 집 내부와 햇빛으로 달궈진 마당의 온도차로 인해 공기의 대류현상이 일어나 시원한 바람을 덤으로 얻게 되지요."
한옥은 누드 건물이다. 철제나 석고보드로 덕지덕지 옷을 입힌 요즘 건축물과는 달리 한옥은 내장재가 없기 때문이다. 옷을 벗었으니 시원할수밖에. 맞바람이 얼마나 집을 시원하게 하는가는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한옥의 방은 맞바람을 기본으로 설계됐다. 양쪽에 문을 내는 것은 필수.
박 연구원은 "누드 건물인 한옥이 가진 또하나의 특징은 마루 문화"라고 했다. 특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영남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마루가 훨씬 넓고 크다. "마루가 연결된 방의 문은 들어올릴 수 있도록 분합문을 썼지요. 방 안에서도 마루에 앉은 기분을 낼 수 있게 만든 아이디어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지혜는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지요". 대청마루와 사랑마루에 앉아 집앞을 흐르는 시내와 구름으로 휘감긴 산봉우리를 본다고 상상해보라. 이보다 더 좋은 피서지가 또 있을까. 무더운 여름철만큼은 한옥(韓屋)이 한옥(寒屋)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재현하기 위해 12채의 한옥을 모아놓은 영주 선비촌은 최근 시원한 여름나기를 위해 전국에서 1박 체험관광객의 예약문의가 쇄도하고 있단다. 100년만의 무더위가 찾아온다며 벌써부터 난리다. 올 여름은 우리 조상들의 시원하고 특별한 여름나기를 체험해보는 것은 어떨까. 숙박비 하루 2만~5만원, 문의 054)634-3310.
사진=박순국편집위원 tokyo@imaeil.com
◇정용의 500자평
한옥(韓屋)은 우리 민족의 삶의 정서가 모두 담겨있는 집이다.
한옥의 특징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지만 가장 큰 것은 난방을 위한 온돌과 냉방을 위한 마루가 균형 있게 구조를 이루고, 토기와나 초가지붕은 냉·난방 기능도 하고 있어 겨울에는 열을 빼앗기지 않고 여름에는 강렬한 태양열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장은 치안을 위해서 높이 쌓거나 위협적이지 않으며 나지막한 담장은 아름다움이 더해 어찌 보면 장식에 가깝다. 담장 높이가 4자(120cm)로 한 것은 짐승들의 침입을 막음 정도다. 담은 집 안팎을 구분할 뿐이며, 사람의 눈높이 이하로 만들어 바깥 경치를 볼 수 있게 했다.
우천시 빗물이 튀는 것과 땅으로부터 오르는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쌓은 돌 기단, 천연석으로 깎은 초석 위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 석가래 위에 지붕을 얻는다. 기둥 사이의 벽은 짚과 흙을 섞어 흙벽으로 만들고 창에는 천연나무로 만든 한지를 발랐다. 격자무늬 등에 붙어 있는 창호지는 닫혀 있어도 채광과 통풍이 된다.
강한 햇살은 은은한 빛으로 변화시키고, 차고 급한 바깥 공기는 막아주고 방안의 탁한 공기는 천천히 빠져나갈 수 있는 기능도 갖게 했다. 문창호지는 뜨거운 구들방의 온도, 습도를 조절하니 유리문과 비교가 되지 않는 살아 숨 쉬는 문이다. 방바닥에는 한지에 콩기름 등을 발라 윤기 있게 했고 물이 바닥에 스며들지 않게 방수효과도 겸했다.
상류 주택의 한옥은 기능면뿐 아니라 예술적인 면도 중요시했다. 지붕, 용마루, 내림 마루, 추녀선의 아름다움은 전 세계인들이 극찬하고 있다.
한옥은 집의 구조에서부터 만드는 재료까지 자연친화적이다. 수천 년 우리와 같이 해온 한옥은 우리의 토양 위에 우리 환경에 적합한 집이다. 한옥의 참모습을 알고 사랑했으면 한다.
*아름다운 집에서 향기롭게 사는 집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연락하실 번호는 053)251-158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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