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과 의학사이-복부 외상

어느 날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과 만나 1차, 2차 하며 만취가 되도록 술을 마셨다.

한 친구가 만취해 의식을 잃었다.

자정 쯤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회사 사무실 소파에 눕히고 돌아갔다.

아침에 친구들이 확인해 보니 그는 숨져 있었다.

친구들은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사망자의 신체에 외상 흔적이 전혀 없었고, 간밤에 외부에서 누가 침입한 흔적도 없었기 때문에, 술에 너무 취해 사망한 것으로 단순히 생각하여 가족들과 협의해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늦게 달려온 사망자의 아버지가 "젊은 사람이 술만으로는 죽을 수가 없다"며 아들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검을 요청했다.

체표에는 좌측 무릎과 오른 쪽 팔 뒤쪽에 경미한 찰과상이 일어나 있었고, 오른 쪽 손등에 타박상이 있었다.

겉으로는 가슴이나 복벽에 외상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피부를 박리하고 피부 아래에 피하지방조직을 보니 뚜렷한 피하 출혈이 있었다.

복부에 외상당한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복강 내에는 대량의 출혈이 일어나 있었다.

출혈 장소는 장간막의 비교적 큰 정맥이 파열되어 이곳으로 출혈이 계속 일어 난 것이다.

부친의 의혹이 입증된 셈이다.

사인은 복부 외상에 의한 장간막 정맥 파열로 초래된 실혈사이다.

이 같은 원인은 복부에 비교적 강하고 좁은 범위의 외력에 의한 것으로 흔히 싸움 중 발로 차는 경우라고 판단하고 경찰에 추가 수사를 요청했다.

경찰 조사 결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숨진 자의 친구들이 잠깐 화장실에 다녀 온 사이 같은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다른 일행 중 한 사람이 넘어진 변사자의 배를 발로 두 번 밟은 것을 확인됐다.

물론 가해자는 구속됐다.

외부에 드러나는 상처가 없다고 외상의 의한 사망이 아니라고 속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조금이라도 의문이 있는 죽음인 경우 반드시 부검을 해야 억울한 죽음을 막을 수가 있다.

특히 복부는 탄력이 많아 외력에 의한 상처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또 흔히 복부 구타는 큰 위험이 없는 줄로 알기 쉽다.

그러나 복강 내에 혈액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 간, 비장, 신장, 췌장 등 장기가 많다.

또 복벽은 탄력이 크기 때문에 복강 내 깊숙이 위치한 장기도 가격당해 파열되기도 한다.

간은 우측 상복부에 위치해 늑골로 보호된다.

그러나 때때로 늑골이 부러질 경우 그 늑골이 '칼'이 되어 간을 찌르는 경우도 있다.

비장은 우측 상복부에 위치한다.

오른 손잡이가 구타할 경우 파열이 일어나기 쉬운 장기이다.

신장은 후복벽 깊숙이 위치한 장기이기 때문에 외상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옆구리나, 측벽의 후면에서 구타당할 때 손상받기 쉽다.

췌장도 신장과 마찬가지로 복강 내 깊숙이 위치하기 때문에 외상으로부터 보호되어 있으나 상복부에 국한된 구타, 자동차 운전 중 충돌 시 핸들에 의한 충격, 싸움 중 발로 차이는 경우 등에 손상받기 쉽다.

그 외에도 간경변증이 있는 간, 비장의 비대, 신장의 낭종이 있는 경우 등 질환이 동반되어 있을 때 복부 구타로 쉽게 파열되기도 한다.

싸움 중 구타를 할 때 상대방에게 이러한 질환이 있는지를 미리 물어 보는 것이 현명한 방법(?) 아닐까. 채종민(경북대 의대 법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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