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淨友) 홍정희(洪貞嬉·55) 화백은 마흔다섯 살까지 그냥 장사꾼이었다.
인사동 고미술품 가게인 예랑방 주인. 누가 가르쳐준 적도 없지만 그는 스물네 살 때부터 고미술계를 기웃거렸다.
청계천 벼룩시장, 아현동 등지 괜찮은 작품이 있을 만한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주요 취급품은 도자기. 민속품과 보자기도 많이 다뤘다.
한때 인사동에서 '홍여사'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 정도.
성공한 그였지만 어느날 문득 '이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
고미술품이 좋아 20년 가까이 장사를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이(利)를 탐하는 보통 상인과 똑같아져 버린 게 싫었다.
서둘러 가게를 정리하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속으로 들어갔다.
좋아하던 친구와 연락도 끊었다.
그가 새로 매달린 것은 그림. 그에게 그림은 일종의 '구원' 이었다.
하루 10시간에서 12시간씩 그림을 그렸다.
3, 4년동안 밤인지 낮인지, 계절이 가는지, 해가 바뀌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홍익대 인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 이름도 매화재(邁畵齋). 그림 그리는 일에만 매진하라고 아들이 붙여준 것.
"그림 그리기 위한 '눈 공부'는 했지만 머리와 손이 안 따라줘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몰두해 열심히 열심히 그리다보니 어느날부터 자연스레 그림이 그려지는 듯 했습니다.
"
지난 10년간 그는 개인전을 여덟차례 가졌다.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민예품과 감상과 완상의 대상이 된 고미술품에서 새로운 미적 가치를 발견한 그의 그림은 외국에서 호평을 받았다.
열심히 일하다가 돌아보니 모두 결혼하고 주위에 아무도 남지않아 31세, 32세 나이에 서로 구제하는 차원에서 결혼했다는 남편 우창환(56)씨는 고미술품 감정 분야에서 '대가'로 통한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국전에 입선한 적도 있는 그의 이력이 고미술품을 보는 '눈'에 보탬이 됐을 게다.
홍 화백은 자신을 릴레이 '이런 삶' 주인공으로 추천한 김복희 한국무용협회 이사장과 묘한 인연이 있다.
대구 수창초등을 졸업하고 제일여중에 시험을 치러 갔다가 마침 강당에서 누군가 무용을 하고 있어 까치발로 들여다봤는데 그 때 그 여학생이 김 이사장이었다는 것. 그들이 다시 만난 것은 17, 18년전 서울의 어느 절. 강당에서 춤추던 여학생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던 탓인지 보자마자 알아보고 '제일여중 선배 아니냐'고 물었다 한다.
예지력인지 끼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최근 김 이사장이 자신의 다리 때를 밀어주는 꿈을 꿨다'며 기자가 찾게 된 우연에 대해 신기해 했다.
중년의 나이에 삶을 혁명한 그는 '한국의 구스타프 크림트'를 꿈꾼다.
'구상과 비구상의 어울림을 추구한다'고도 했다.
"여성을 잘 표현하는 크림트가 마음에 든다"는 그는 "고미술의 문양과 장식적 요소가 있는 장신구 등을 통해 한국의 여성성을 좀 더 잘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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