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까치밥으로 남겨두었던 몇개의 빠알간 감 이야기에서 '남기고 떠나는 여유'를 전한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한 마음의 양식이 된다는 대목에서 '남겨둠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빠른 물살에 휩쓸려 잃어버린 흰 고무신 한 짝에 얽힌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 대목에서는 읽는 이의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대구가톨릭대 신창석(48'철학과) 교수가 이렇게 자신이 경험했던 평범한 삶의 이야기를 알기 쉬운 철학으로 승화시킨 '씨앗은 꽃에 대한 기억이므로'란 에세이집을 냈다.
그동안 신문에 연재했던 칼럼들과 개인적으로 틈틈이 모아 두었던 글들을 묶은 신 교수의 에세이집은 한 편의 코미디이면서 읽는 이의 가슴을 저릿하게 만드는 인생 희곡이다. 필자 자신의 지나온,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소박한 문체로 그려내면서 보통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와닿는 인생철학을 제시하고 있다.
철학을 난해한 형이상학의 대상으로 설명하려는 기존의 접근방식을 과감히 깨뜨리는 시도를 통해 그만큼 읽는 이에게 유쾌한 웃음과 해학을 선사한다.
저자는 그의 부모님 그리고 조부모님이 했던 일과 생각을 기억하고, 또 이를 자신의 후세들에게 직접 들려줌으로써 한 가족의 역사를 구전(口傳)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자신에게 전해준 이야기들과 그 의미를 오늘 재구성해서 다시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신 교수의 '씨앗은 꽃에 대한 기억이므로'는 그래서 이러한 가족의 구전사(口傳史)를 '씨앗이 꽃이 되고, 다시 씨앗이 되고, 그리고 다시 꽃이 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이는 곧 '먼 훗날 자신의 아이들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그 모습이 현재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것을 통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책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어져 있다. 과거에 대한 회상 두 덩어리와 현재를 바라보는 이야기 한 덩어리가 그것이다. 과거에 대한 회상은 주로 할아버지'할머니에 대한 추억으로, 그리고 다른 한 덩어리는 어머니'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엮었다.
책 곳곳에 삽입된 낡은 흑백사진들이 에세이의 품위와 가치를 더욱 격상시킨다. "글쓰기는 이미지를 기록하는 것, 결국 이미그래피(Imigraphy)"라고 명명한 신 교수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지인들의 삶에 대한 인생철학을 사진들을 통해서도 들려주고 있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현대인들이 길을 잃고 좌절하며 방황할 때 잠시 쉬면서 차분히 뒤를 돌아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같은 필자의 제언은 곧 책 속에 담긴 삶의 여유와 '느림의 미학'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신 교수의 인생철학 에세이는 허겁지겁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어느덧 새치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사람들이나,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망설이는 젊은 대학생들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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