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코시안에 애정을!

올해 열 살인 대산이는 아직 유아원에 다닌다.

5일 어린이날에도 엄마의 따뜻한 손길을 느껴보지 못한 채 보냈다.

8일 어버이날에 엄마에게 카네이션도 달아 드리지 못했다.

대신 농사일에 바쁜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품에 안겨 5월을 보내고 있다.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란 가사와 달리 대산이는 5월을 맞아도 푸르게 자라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몸이 오그라들고 있다.

어릴 때부터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중복장애마저 괴롭히고 있다.

대산이에게 5월은 오히려 잔인하다.

엄마의 품을 느껴보지 못한 지 벌써 몇 해던가. 대산이의 엄마는 필리핀 여성. 머나먼 이국 땅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경북의 한 농가로 시집온 엄마는 대산이만 달랑 남기고 몇 해 전 대산이 곁을 떠나 하늘의 별이 됐다.

대산이는 소위 코시안(Kosian:한국인 남성과 동남아시아 여성 사이에 태어난 2세)으로 이렇게 힘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태국인 어머니를 둔 경북 봉화의 은지와 성진이. 남매는 대산이보단 형편이 낫지만 요즘 아래 두 동생들과의 생이별로 가슴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 생활에 어려움을 느낀 어머니가 수 년 전 태어나지 않은 막내 동생과 갓 돌이 지난 동생을 데리고 태국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생이별한 것.

다행히 은지와 성진이의 삶이 매일신문 보도(지난 2월 21일자)로 세상에 알려졌고 우여곡절 끝에 최근 어머니가 되돌아오게 돼 상봉의 기쁨을 누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홀로 귀국할 수밖에 없었고, 두 동생은 태국에 남았다.

태국에서 낳은 동생은 형편상, 한국에서 데려 간 동생은 불법체류자 신분이어서 다시 데려 오는데 적잖은 장애가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대산이와 은지 남매의 아픔과 고통은 이들만의 것일까.

현재 경북지역엔 수많은 코시안들과 동남아 출신 주부들이 한국인으로서 당당한 삶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한국 적응에는 언어적, 문화적, 사회적 장벽이 너무 많다

때문에 이들은 '이방인 아닌 이방인'으로 맴돌고 있다.

피부색이 다르고 말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 따른 어려움은 쉽게 이해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배려나 관심은 어떠한가. 당국의 정책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우리를 대신한 이들 농촌 지킴이들을 두 번 울리는 어리석음을 우리는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코시안과 다르지만 비슷한 입장이던 아메라시안(Amerasian)의 고통과 눈물을 목격해 오지 않았던가. 잘 알려졌다시피 아메라시안은 '대지'의 저자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펄 벅 여사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 등 아시아로 진출한 미국인과 아시아 여성들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지칭하기 위해 만든 말.

펄 벅 여사는 아메라시안이 미국과 아시아 양쪽에서 다른 피부색 등으로 인종 차별주의의 희생자로 어느 사회에도 소속되지 않고, 천덕꾸러기로 학대받거나 모욕당하고 버림받는 현실을 슬퍼했다.

이에 아메라시안의 입양과 복지를 위해 1949년 미국 최초로 인종간 국제 입양기관인 웰컴하우스(Welcome House)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한국 아메라시안을 입양했다.

한 발 더 나아가 펄 벅은 한국에 들러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이 지원하는 희망원에 생활하는 아메라시안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를 직접 살펴 보는 등 남다른 관심을 쏟아 생전에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에 이어 한국"이라며 한국의 아메라시안에 정성을 쏟았고 한국 아메리시안을 소재로 책을 냈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에서 버림받은 수많은 아메라시안들의 슬픔과 아픈 기억을 가진 만큼 코시안들이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고 과거 아메라시안들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관심과 배려를 아끼지 않을 때이다.

마침 경북도가 이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지난달부터 실태조사를 벌여 이들의 소외감 해소와 완전한 정착을 위한 행정지원을 모색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경북도의 적극적 대책마련을 기대해 본다.

사회2부장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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