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들이 남편의 일터로 향하고 있다. 어젯밤 못 다한 부부싸움 계속하려고? 천만의 말씀!
이번주 취업면은 '솥뚜껑 운전사'를 탈피, 노동부가 운영하는 대구기능대학에 입학해 전문 엔지니어로 변신했거나, 변신을 준비 중인 억척 아줌마들을 만나봤다. 남편 회사일을 돕기 위해 늦깎이 학생이 된 그들은 야무진 목소리로 "내 기술을 다져 남편 회사를 더 키우겠다"고 말했다.
◆나도 이젠 대표이사
김향자(39)씨는 제조업체 내 먼지 등을 빨아들이는 집진시설 전문업체인 (주)명진기공(대구 이현동)에서 일한다. 종업원 8명 규모, 연간 매출 7억 원 수준인 명진기공의 CEO는 김씨의 남편.
명진기공은 올 들어 지난해에 비해 주문이 크게 늘었다. 남편은 아내 덕분이라고 칭찬을 멈추지 않는다. 3년 전까지만 해도 '멀찍이 도와주는 정도'였던 아내가 올해부터는 '능숙한 엔지니어'가 됐기 때문이다.
"경리업무와 주문전화 받는 일이 몇 년 전까지 주업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환경설비를 모르니까 주문전화를 받는 도중 고객과 말이 안 통하는 거예요.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하자, 다짐을 했죠."
2003년 환경화학과에 입학, 지난 2월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가까이 지나 다시 꺼내 든 책. 더욱이 엔지니어 공부라 더 힘들었다.
아이들 공부시키랴, 틈틈이 남편 회사일 도와주랴, 그리고 안 해본 대학 공부까지. 하지만 2년 간의 배움터 생활을 통해 김씨는 "이제야 기계에 눈을 떴다"고 말했다.
"대표이사 명함을 들고, 설비 수주를 직접 따러 다닙니다. 엔지니어 자격도 있으니 말문 막힐 일이 없어요. 앞으로 현장 시공법만 더 익히면 우리 남편 따라잡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전기 전문가에 도전
"전기공사를 주력으로 하는 남편 회사(현광전기·경북 예천 소재)가 일감은 많은데 손이 부족해요. 공사를 따내려면 전기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직원이 3명은 되어야 하는데 항상 사람이 모자랍니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내가 해볼게'라고 했죠."
장정화(32)씨는 전기계측제어과 2학년이다.
8세, 9세짜리 아이들을 키우며 예천에서 대구까지 통학을 하고 있다. 가끔은 남편 회사일도 봐줘야 한다. 강행군이다.
전기를 배워서 자격증도 따고 현장에 함께 나가겠다고 했더니 처음엔 남편이 말렸다. "당신, 전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그런 얘길 해?"
장씨는 배워보니 남편 말처럼 전기가 어렵더라고 했다. 때문에 그는 입학 이후 새벽 3시 이전에 자본 적이 없다. 아이들 때문에 야간 과정을 듣다보니 귀가시간이 밤 11시 30분. 집안일 대충 마무리해놓고 그날 배운 것 복습하면 금방 새벽이 된다.
1년 정도 배웠는데 이제 전기공사 도면 보고 틀린 점도 잡아낸다. "여보, 이거 접점이 틀렸어."라고 얘기하면 남편 얼굴엔 대견스럽다는 말이 씌어 있다. 1학년 때는 대구기능대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아이들이 초교 1, 2학년인데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 학교 다닌다'고 자랑을 해요. 1인 다역을 해내야 하니까 몸은 정말 힘들지만 목표가 있으니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남편은 건축, 나는 설비
"어머, 애기 엄마. 목이 그게 뭐야, 덴 자국이잖아."
박서연(30)씨는 최근 이웃 아주머니로부터 걱정 섞인 얘길 들었다. 목 부위에 상처가 났다는 것이다.
뒤늦게 알았다. 실습 시간, 용접 불꽃에 목을 데었다는 걸.
지난 3월 건축설비자동화과에 입학한 그 역시 강도 높은 실습교육이 포함된 교과과정을 이수 중이다. 박씨의 목표는 에어컨·보일러 등 건축물 내 설비분야 엔지니어가 되는 것.
"남편이 건축회사(태정ENG)를 운영하고 있는데 설비분야를 강화해야겠다는 말을 해요. 일찍 결혼한 편이라 10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는데, 제가 돕고 싶었습니다."
그는 건축설비자동화과의 홍일점이다. 여성이 도전하기에 쉽지 않은 분야인 탓.
"실습위주 교육이 많은데 1학년이라 기초 실습이 많아요. 난생 처음 한 용접 실습 때문에 목도 데고, 스트레스 때문에 하루 종일 소화가 안 되는 날도 많았죠. 몇 달 지난 지금은 적응이 됐습니다. 힘도 엄청 세졌어요."
그는 학교로 향하고 나서 전업주부 때 시달렸던 '답답증'을 털어냈다고 했다. 무엇보다 꿈을 꾸고 산다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했다. 자격증을 따서 남편 회사의 핵심인력이 되는 것이 꿈. 아홉살짜리 아이의 응원도 박씨의 팔에 힘을 더해주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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