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권력과 광기

비비안 그린 지음/ 말글빛냄 펴냄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2월. 흑해가 내려다보이는 우크라이나 얄타 서쪽의 리바디야 궁전에서 영국 처칠 수상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소련의 스탈린이 비밀 회담을 열었다. '얄타회담'으로 불린 이 회담에서 3국 정상은 소련군의 대일본전 참전과 전후 일본에 대한 처리 방안 등을 결정했다. 한국 분단의 단초를 제공한 한반도 신탁통치안도 이 회담에서 처음 나왔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였던 세 강대국 최고 통치자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은 정상적인 업무를 의심할 만한 수준이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끈 윈스턴 처칠의 정신적 기질은 감정적이고 편파적이었다. 그는 정서적으로 불안했다. 의기양양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으며 칭찬을 쏟아붓기도 하고 지독한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1943년 11월~1944년 8월 사이에 세번의 폐렴을 앓았고, 1944년 3월 즈음엔 '단 몇 분간도 집중을 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걸어다니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1921년 회백수염에 감염돼 장애를 갖게 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무거운 쇠 보호대 없이는 걷지도 못했고 부축 없이는 서 있지도 못했다. 뉴딜정책과 미국 경제 회복, 소외 계층 및 장애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펼쳤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였지만 1943년 무렵이 되자 체력은 약화됐고 판단력도 부정확해졌다. 1944년 3월이 끝날 무렵 그는 일시적인 의식 장애 등의 증상을 보이는 고혈압성 뇌병증을 앓고 있었다. 그는 만성 폐질환과 울혈성 심부전, 고혈압에 시달렸다. 루스벨트는 "무의식 중에 입을 벌리고 있었으며 때때로 생각이 마무리되지 않아 말을 끝맺지 못하기도" 했다.

최소한 5백만 명의 국민을 학살한 스탈린은 냉정하고 빈틈없는 정치가의 인상을 풍겼다. 그는 비난이나 죄책감을 허용치 않았고 거의 병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애정적 유대가 결여돼 있었다. 그의 성생활은 비인간적이고 무의미했다. 1937년 무렵 그의 심리 상태가 정상적이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는 음모와 살해에 강박적인 의심에 사로잡혀 음식을 먹기 전에 꼭 다른 사람에게 먼저 맛을 보게 했고 차는 꼭 밀봉해 특별히 하인 한 사람만 열어 볼 수 있도록 했다. 크렘린에 있는 저택은 공기 중에 독성 입자가 없는지 검사해야 했다.

통치자들의 비정상적인 성격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칼리굴라나 네로는 로마 제국의 운명을 수렁에 빠뜨렸다. 스페인의 후아나 여왕과 돈 카를로스의 병은 스페인 왕국에 장기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 스탈린이나 아돌프 히틀러, 노쇠한 마오쩌둥과 같은 권력자의 정신적 질병 혹은 쇠퇴는 수백만 명의 생사를 위협했다.

'광기의 역사'는 미치광이라 불려온 과거 통치자들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들이 보였던 광기의 본질과 그 광기가 세계와 국가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 책이다. 저자는 로마시대의 칼리굴라와 네로에서 현대의 무솔리니와 히틀러, 스탈린까지 서양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절대 권력자들의 광기를 파헤친다.

히틀러는 평생 동안 미숙하고 심지어 어린아이 같았다. 그는 사탕과자와 초콜릿을 좋아했고 서커스와 영화 관람을 즐겼다. 그가 변함없이 가장 좋아한 작품은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 그리고 '킹콩'이었다. 히틀러는 위장 통증 때문에 복용하던 약들로 인해 암페타민 중독에 시달렸다. 암페타민 중독은 신경계에 심각한 손상을 입혀 흥분성이나 자극 감수성, 불안, 불면증, 긴장, 수다, 편집증적 망상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 모두는 히틀러의 성격에서 나타난 전형적인 특징들이었다.

정신적 질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중추신경계에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인 뇌염은 두통, 신경과민, 불면증 등과 시각적, 촉각적, 청각적 착각들을 불러일으킨다. 자신을 신(神)이라고 생각한 로마 칼리굴라 황제나 미국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정신적 불안정의 원인이 뇌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또 측두엽 간질이나 매독의 경우도 뇌염과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 무솔리니, 히틀러도 비슷한 이야기가 언급되곤 한다. 조울증도 흔한 경우다. 영국의 리처드 2세, 카스티야의 여왕 후아나가 그 경우다.

광기는 질병이라기보다 보수적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다. 정신이상자들은 대다수의 동시대인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과 문제들을 바라보기로 결심한 끝에 사회에서 이탈하거나 자신이 속한 환경의 본질에 이의를 제기하기 때문이다. 로이 포터는 "미친 사람들이 하는 말은 계몽적이다. 그들은 거울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거나 혹은 실제로 분별 있는 사회의 논리 그리고 심리를 거울에 비춰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많은 지도자는 실제로 미쳤던 것일까. 아니면 적대자들이 이들의 통치나 성격상의 큰 오점을 공격하기 위해 '미친'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준 것일까.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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