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근로자 임금 교묘하게 빼돌려"

2000년 7월부터 2년간 경산시 남천면 ㄷ섬유에 근무했던 에르가소바 나르기자(35·여·우즈베키스탄)씨. 회사는 나르기자씨를 고용하면서 2개의 통장을 만들어주었고 매달 23일 월급 75만 원 중 15만 원을 한 개의 통장에 적립해 관리하면서 '퇴직할 때 돌려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나르기자씨는 지난 2000년 8월 22일부터 10개월간의 적립분 150만 원을 못 받았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그 부분은 모른다고 하기 때문. 그러나 25일 오전 대구외국인노동자상담소 관계자가 경산 모 은행 지점에서 확인한 결과, '에르가스'라는 예금주 명의로 개설된 2개의 통장이 있고 누군가 돈을 인출해 간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 김동현 목사가 나르기자씨의 체불임금을 받게 해달라며 대구지방노동청에 고소했지만, 노동청은 "수사 결과, 고소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피의자는 '불기소(혐의없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한다"는 회신을 보내고 대구지검으로 사건을 송치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26일 "나르기자가 돈을 다 찾아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러는지 알 수 없고 여태 아무 문제도 없었다"며 "통장 관리·보관은 업체에서 하고 있으나 언제든 찾아쓸 수 있도록 했고 서류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산업재해보상보험금, 휴업급여 등을 고용업체가 관리하면서 빼돌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3년 간의 산업연수생 생활을 마치고 불법체류자로 남았던 둔(27·베트남)씨는 지난해 대구 지역 한 프레스공장에서 일하며 오른쪽 검지 손가락 골절상을 당했다. 회사는 근로복지공단이 둔씨의 통장으로 입금한 휴업급여(치료 중 월급의 70%를 지급) 290여만 원을 빼돌렸고 퇴직금과 임금마저 주지 않았다. 소송이 벌어지자 업체 관계자는 합의금으로 500만 원을 냈지만 이것도 결국 밀린 임금과 퇴직금, 횡령한 금액이었을 뿐이다. 펑(30·베트남)씨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대구지방노동청에 진정하고 나서야 퇴직금 및 임금 150만 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외국인노동자 상담소 김경태 목사는 "지난해 총 5천 건의 외국인 노동자 상담 중 80% 이상이 체불 임금에 관한 것이었다"며 "임금을 안 주려고 실컷 부려먹다 직접 출입국사무소로 데려가 강제출국시키는 사례도 있으며, 이것이 무서워 피해를 호소하지 않는 잠재적 피해 노동자도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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