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울릉도 울릉군 서면 태하리 420번지 학포마을. 서면 일주도로변 산중턱 아래 골짜기를 더듬어 걸어서 10분쯤 내려가면 나타나는 이 마을은 아름다운 해안의 몽돌(조약돌보다 조금 큰 돌)과 병풍 같은 절벽에 둘러싸인 한적한 곳이다.
30여 년 전만 하더라도 10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들이 오순도순 살았던 학포마을은 지금은 27가구 50여 명만 남았다.
지난 90년대 폐교된 학포초등학교 터만이 활기가 넘쳤던 옛날 분위기를 전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소황토구미(小黃土邱尾)로 불리기도 하는 이곳에는 일찌감치 독도가 우리 땅임을 선언하고 지켰던 조선 관리들의 역사적 흔적이 남아 있다.
바로 조선 고종 황제의 어명으로 1881년 울릉검찰사로 임명돼 1882년 4월 7일 부임한 이규원(李奎遠) 검찰사가 그해 4월 30일 새긴 암각문(岩刻文)이다.
마을에서 150m 정도 안쪽에 위치한 벼랑에 새겨진 이 글의 내용은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 고종팔, 유연호, 최용업. 임오 오월'이다.
마을의 수호신으로 인정받으며 해안을 홀로 지키고 있는 이 암각문은 경북도 문화자료로 등록돼 있으며 이 검찰사를 제외한 세 명은 함께 입도한 수행원으로 알려진 인물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규원 일행은 지금의 학포마을에 도착, 육로를 통해 태하마을·흑작지(黑斫支· 현포)· 나리동(羅里洞) 등을 답사한 후 배를 타고 5월 9일부터 10일까지 이틀간 섬 전체를 둘러봤다.
이후 5월 11일 산신에게 제사를 지낸 후 섬을 떠나 5월 13일 해질 무렵 당시 강원도 평해읍 구산포에 상륙한 것으로 돼 있다.
이 검찰사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밝히는 많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독도가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편입 기록될 수 있도록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도 이규원 검찰사라는 사실이 지난해 9월 동국대 임영정 역사교육과 교수가 밝힌 바 있다.
이승진 독도박물관장은 "이 검찰사가 제주도 목사와 군무아무대신을 역임하면서 독도와 조선의 영토 지키기에 노력한 공적이 밝혀져 지난해 제주박물관에서 이규원의 삶을 재조명하는 유품과 울릉도 검찰일기등 400여 점의 유물특별전이 열렸다"고 전했다.
이우종(71) 울릉문화원장은 "고종황제의 명을 받아 부임한 이규원은 울릉도 최초의 검찰사로 이 마을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이 검찰사의 독도지키기 흔적을 찾아 이씨의 후손들이 지난해 울릉도를 방문하기도 했지만 이 검찰사가 남긴 독도 관련 자료들은 현재 제주에만 보관돼 있어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독도박물관 황성웅 사무장은 "지난해 이 검찰사의 유물특별전에서 전시된 유품 속에는 울릉도 검찰일기 등 우리 영토 지키기에 노력한 검찰사의 얼과 체취를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며 "이 유품들은 국내 유일의 영토박물관인 독도박물관에 소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검찰사는 나중 이 마을이름을 '소황토구미'라 불렀다.
'붉은 흙'이 나는 작은 마을이란 뜻인데 '소'자를 붙인 것은 인근 태하마을을 지칭하는 '황토구미'보다 조금 작은 마을이란 의미다.
당시 '붉은 흙'은 향나무와 함께 조선 관리들이 울릉도에 직접 갔다 왔음을 중앙 정부에 증명하는 중요한 증표였다.
소황토구미는 그러나 후에 마을 주변의 바위산이 학이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학포마을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울릉도에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살았을까? 지난 1998년 서울대박물관 조사팀은 울릉도 지표조사에서 지석묘, 무문토기, 갈돌·갈판(울릉 현포·남서·저동리)을 발견한 바 있다.
이는 청동기시대(기원전 1000∼300년) 또는 철기시대 전기(300년∼1년)에 울릉도에 사람이 살았다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전설과 구전으로 이어져온 우산국(울릉도)의 우해왕(于海王)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왕관 조각과 귀걸이는 울릉도 향토사료관에 전시되고 있지만 곳곳에 산재한 유물·사적지 보존과 역사를 새롭게 정립할 전기 마련을 위해서는 고고학계의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울릉·허영국기자 huhyk@imaeil.com사진: 이규원 검찰사 사적비(각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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