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왔네 돌아왔네, 우리 할머니 돌아왔네 ♬"
정신대 할머니 김순악씨의 일흔여덟 번째 생일은 특별했다.
해방 직전, 열일곱 살 꽃다운 나이에 고향 경산에서 실 공장 직공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만주로 끌려간 뒤 일본군을 상대로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던 김 할머니. 올해는 손자뻘 중학생들이 직접 차려준 생일상을 받았다.
29일 낮 대구시 중구 남산동 (사)청소년교육문화센터 '우리세상' 사무실. 대건중 3학년 1반 학생들이 '귀선'(1945년 작)을 합창하자 할머니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가정의 달을 맞아 교육적이면서도 즐거운 일을 해보자고 학생들에게 제안했습니다.
"
조윤화(48) 담임교사는 이달 초 학급회의에서 '정신대 할머니의 특별한 생신상'을 마지막 토요일 학급활동으로 제안했다.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던 학생들도 정신대에 대한 조 교사의 설명을 듣고는 적극적이 됐다.
반 학생 30여 명이 '요리반', '공간 꾸미기반', '재롱반'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학생들은 이날 아침부터 파전, 호박전, 주먹밥, 샐러드, 잡채 등 음식들을 그럴싸하게 차려냈다.
생일장소 꾸미기를 맡은 아이들은 '아트 풍선' 만들기 솜씨를 발휘해 꽃, 칼 등 갖가지 모양의 풍선을 장식했다.
또 수업을 마친 자투리시간에 연습한 노래와 율동도 할머니를 즐겁게 했다.
이미 학기 초부터 담임선생님과 함께 '한솥밥 먹기', '학급대항 운동회' 등의 행사를 통해 어울렸던 학생들이라 분위기는 한껏 고조됐다.
오승진(15)군은 "한 달 간 생일잔치를 준비하면서 반 아이들끼리도 즐거웠고 할머니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선물증정식. 학생들이 환경미화 우수상으로 받은 상품권으로 산 여름 잠옷을 내놓자 김 할머니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손수건을 찾아 눈가에 맺힌 이슬을 닦아냈다.
김 할머니는 "아팠던 마음이 이제야 풀어지는 것 같다"며 "죽는 날까지 이 마음을 간직하겠다"고 울먹였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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