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생명입니다. 그 생명을 찾아, 남들이 버리고 간 땅을 일굴 때 달과 별이 제 친구였습니다. 요즘도 새벽 일찍 개밥바라기 별을 보고 산(태백산맥의 지맥인 배바우산)에 올라, 하루종일 약초 나무 토종벌 야생초목 (방목)염소 등을 돌보면서 자연에서 살다가 해가 지면 산을 내려옵니다."
경북도내 오지 가운데 한곳인 봉화군에서도 상오지인 소천면 분천2리 원곡마을 끝집에 사는 농부 윤재원(44)씨.
◆농부는 숙명, 다시 태어나도 이길
대구에서 서울 도심까지 96분이면 도착하는 초고속시대에 차로 꼬박 4시간을 달려서 만난 농부 윤재원(44)씨는 듣던대로 '천연기념물'이다. 태백준령을 닮아 진실되고 거짓이 없다. "아직 젊지만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또다시 이 길을 택할 것입니다."
도시화 바람과 함께 농부로 살기 힘들다며 모두들 농촌을 초개같이 버리고 '쌩쌩' 떠날 때 순직한 그는 역방향을 택했다. 외려 더 오지로 천천히 들어갔다. 오지로 들어가다가 길이 없으면 망치와 정으로 바위를 깨 길을 내고, 땅이 필요하면 일구는 '무공해 슬로라이프'를 선택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고추농사를 시작한터라 농군생활은 삼십년을 후딱 넘었다. 그새 윤씨는 형제들 대학 뒷바라지(막내 충원씨는 공주대교수)를 하고, 남은 돈으로 인근의 빈집 7채와 배바우산 일대 5~6만평을 매입, 너댓개의 농장으로 조성했다.
◆글대신 파란싹이 눈에 어른거려
실개천이 흐르고 산돌배가 많이 나는 용골농장(1만2천평), 목초 대량재배지인 소바우농장(1만5천평), 낙동강이 굽이쳐흐르는 용문농장(6천평), 겨울철에 주로 이용하는 원곡농장(6천평)에는 윤씨가 방목하는 염소 500여마리가 수시로 이동하면서 자란다.
"농부가 된 것은 숙명이죠. 어릴때 공부하러 학교에 가면 책 위로 무 배추의 파란 싹이 눈에 어른거렸습니다. 부모님이 꼴을 베어오라면 얼른 뛰어가서 다른 형제들보다 몇배 더 많이 지고 왔습니다. 산에 지천으로 꼴이 널렸는데 그냥 두기가 아깝잖아요."
유달리 일욕심이 많은 그는 아직 젊지만 연골이 많이 닳아서 온몸이 아프다. 그렇지만 쉬지 않는다. 아내(박종화)가 "일 좀 그만하라"고 다그치지만 그는 "일하다가, 농사짓다가 죽는게 내 운명"이라며 부지런히 산을 오르내린다.
◆시골 노인들 위한 일 뭔가 고민
"시골에는 나이많은 어르신들만 계시잖아요. 형편이 되면 그들을 위한 무슨 일인가하고 싶은데 아직 윤곽을 그리지는 않았어요. 무공해 지역에 그들을 편안하게 모시며 뒷바라지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구요." 윤씨의 평생 소원은 잘사는 농촌만들기다.
올초 흰사슴이 태어난 곳으로 유명해진 '분천 2리'이지만 그곳이 도시라면 윤씨의 집은 그야말로 촌이다. 휴대폰도 되지 않고, 수돗물도 없다. 태백산물을 끌어다 그냥 마신다. 춘양목으로 가득찬 태백산 생수를 마시면 보약이 필요없다. 전기가 들어온지도 그리 오래지 않다.
◆ 수달래 강가에서 아내와 함께 노래
"일하는데 하루가 모자라지요."
'빨치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산을 잘 타는 사람'으로 유명한 윤씨는 지리정보시스템(GIS)가 없어도 농장 주변 배바우산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에 빼곡이 들어있다. 지식기반사회에서 가장 값나가는 암묵지(webware)이다. 그의 암묵지에는 어디에 헛개나무가 있고, 어디에서 가시오가피가 자라며, 어디에서 우산나물이 나는지 다 안다. 까틀복숭아, 뽕오디, 송이, 도토리, 토종꿀도 철따라 수확한다.
"저는 천직이 농삿꾼이지만 7남1녀 고명딸로 자란 아내는 힘들었을 겁니다." 그럴때면 수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집앞 낙동강변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어려움을 헤쳤다. 이때 집 뒤 토굴에 살던 수도승이 솔잎차 담는 법을 가르쳐주셨다.
◆ 춘양목 솔잎차를 아십니까
"수행하는 여승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시며 풀던 차"라며 가르쳐준 솔잎차는 햇솔로 담는다. 올해도 윤씨가 아내 어머니와 함께 담아 스무말, 열말씩 되는 큰독에 솔잎차를 여남은 독이상 담아 땅에 묻었다. 발효가 되면 상기한 솔내가 머리를 식혀준다. 춘양목 햇순을 따서 태백산 깊은 물로 담궈서 깊은 향을 지닌 윤씨의 솔잎차는 20여년 세월이 흐르면서 어느새 '춘양목 솔잎차'로 소문이 났다. 누구든지 맛만 보면 그에 반하고, 향과 색에 취한다. 그렇게 담궈서 그냥 나눠마시던 윤씨의 솔잎차는 봉화군의 '춘양목 프로젝트'로 또다른 기회를 맞을 것 같다.
춘양목 프로젝트는 봉화군이 경북대지역개발연구소(소장 이철우교수, 책임연구원 홍성천교수)해외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산림자원인 춘양목(이명 금강송)을 활용하여 봉화군을 잘살게 만들려는 야심찬 계획 가운데 하나.
◆춘양목 프로젝트로 새로운 전기맞을 듯
춘양목 프로젝트는 봉화읍~물야면~오전약수터~춘양면~봉화읍에 이르는 44km에 명품 춘양목으로 산책 100리길을 조성하는 것을 필두로, 춘양목과 관련된 각종 문화, 관광상품을 개발하여 춘양목을 대표적인 지역관광상품으로개발하는 것. 거기에는 춘양목 테마파크인 파인토피아 외에 춘양목 삼림욕장, 송이와 각종 임산물 생산공장, 춘양목 식품까지 개발될 예정인데 윤씨의 춘양목 솔잎차는 대중들이 가장 가까이할 수 있는 춘양목 관련 상품 가운데 하나. 을 할 예정이다.
"글쎄, 제가 담그는 솔잎차가 어떤 성능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좋다고 상품화하라니 분석을 의뢰해볼까합니다."
돈, 도시, 속도와는 상관없이 농사를 천직으로 부지런하게 살아온 농부 윤씨에게 '21세기 웰빙트렌드'는 더없이 좋은 기회로 다가서고 있다.
최미화 편집위원 magohalmi@imaeil.com
사진 정재호 편집위원 jhchu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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