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간 큰 남편, 간 큰 아내

한 공처가가 그날도 아내로부터 한바탕 욕지거리를 당한 뒤 친구에게 하소연했다. 친구가 점잖게 조언을 했다. "자넨 왜 그렇게 마누라를 무서워하나? 이담에 마누라가 또 욕을 해대면 남자 대장부의 기개로 마누라 얼굴을 빤히 쳐다보란 말이야. 날 보라구. 우리 마누라는 내 얼굴 보기를 호랑이 보듯 무서워한다구." 마침 외출에서 돌아온 친구의 아내가 이 말을 듣고 노기충천, 남편의 귀를 홱 잡아당기며 소리질렀다. "당신이 호랑이면 나는 뭐지?" 친구는 새파랗게 질려 모기소리만하게 말했다. "다, 당신은 무, 무송('수호지'에 나오는 맨 손으로 호랑이를 때려 잡은 인물)이죠."

◇ 중국에서는 공처가를 흔히 '치꽈ㄴ옌(妻管嚴)'이라는 우스갯말로 부른다. 호흡기 질환인 기관염(氣管炎)을 치꽈ㄴ옌으로 발음하는데, 아내 앞에만 서면 기관지염에라도 걸린 듯 벌벌 떤다 하여 공처가를 이렇게 빗대 부른다. 아내만 보면 학질에 걸린 듯 떤다는 우리의 '학처가'와 비슷한 의미다.

◇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사실 우리 사회의 남자들 요즘 풀이 많이 죽었다. IMF(국제통화기금) 난리통에 남몰래 '사나이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그 얼마나였을까. 더욱이 '간 큰 남자' 시리즈에다 '사오정'(45세 정년)이니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니 별별 신조어들도 허파를 있는대로 뒤집어 놓기 일쑤다.

◇ 이르면 내년부터 부부 관련 법안들이 확 달라진다. 서울가정법원 산하 가사'소년제도개혁위원회가 관련 5개 법률 개정안과 이혼 절차 특례법안을 오는 9월 정기 국회에 제출, 통과되면 내년부터 시행된다. 이를테면 주택 등 중요 재산은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처분할 수 있다. 가정 폭력 현장에서 경찰은 즉각 폭행한 배우자에 대해 최장 48시간 퇴거나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다. 3개월 간의 이혼 숙려 기간과 자녀 양육권 합의 등 이혼절차도 까다로워진다.

◇ 제멋대로식 남편, 폭력적 남편 등 진짜 간 큰 남편의 설 자리가 없어질 참이다. 남편을 무시하고 구타까지 하는 간 큰 아내도 마찬가지다. 부부란 긴 인생길을 2인3각(脚)으로 걸어가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임을, 너무 늦기 전에 마음 깊이 새겨 둬야 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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