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생은 아름다워'

네 살배기 막내가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충돌하는 장면을 되풀이 하며 놀이에 한참 빠져있다. 아이는 길을 건너다니면서 차에 치일까봐 두려웠던 모양이다. 그런 불안감을 놀이를 통해 해소하고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처럼 놀이는 아이가 겪은 불안을 극복하려는 숙달의 의미가 있고, 호랑이 같은 사나운 동물 놀이를 통해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하거나, 토끼나 강아지 놀이를 통해 의존 욕구와 애정 욕구를 드러내기도 한다. 아이에게 놀이는 '언어'이자 인생의 계획서라고 할 만큼 중요하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놀이를 통해 아들의 정신건강을 지켜준 지혜로운 아빠의 이야기다. 어떤 놀이치료사 보다 더 훌륭한 아빠를 통해 따스한 사랑을 체감한다. 2차 세계 대전이 한참이던 1930년대 말,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다섯 살 난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유머가 넘치고 낙천적인 귀도는 사랑하는 부인, 귀여운 아들과 평화로운 가정생활을 한다. 아들 조슈아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불행이 닥친다. 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유대인인 귀도와 조슈아는 체포되어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다. 노동력이 없는 노인이나 아이들은 먼저 가스실로 보내지는 참혹한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천진난만한 아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 고심하던 귀도는 놀라운 방법을 선택한다. 현재 수용소 생활은 신나고 해볼만한 놀이(play)라고 하며, 놀이 규칙을 일러준다.

이 놀이는 1,000점을 제일 먼저 따는 사람이 1등이 되어, 상품으로 진짜 탱크를 받게 된다. 군인에게 끝까지 들키지 않고 잘 숨는 아이가 1등이다. 모두 탱크를 받으려고 힘든 캠프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도 운 좋게 선발되어 게임에 참여했는데, 하기 싫으면 당장 되돌아갈 수도 있다. 군인들은 반칙하는 사람을 가려내는 일을 한다. 울거나, 배고프다고 보채거나, 집에 가자고 조르는 것은 반칙이라서 바로 탈락된다. 이같은 것들이 게임의 규칙이다.

장난감 탱크를 좋아하던 조슈아는 진짜 탱크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한다. 고된 노동에 지친 아빠는 오늘도 30점 땄다고 자랑한다. 아들은 매일 점수 계산을 하며, 온갖 고난을 참으며 불평하지 않는다. 아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대신, 놀이와 공상으로 불안과 패배의 감정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마침내 패망한 독일군은 수용소의 흔적을 없애려고 미친 듯이 날뛴다.

이런 와중에 아들을 궤짝 안에 숨기고, 아내를 구하려던 귀도는 사살당하고 만다. 게임에 이기기 위해서는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믿은 조슈아는 숨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다음날, 조슈아 앞으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연합군의 탱크가 눈앞에 나타난다. 조슈아는 승리와 기쁨의 감정으로 수용소 생활을 마감한다. 아빠는 아들에게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망가지는 것조차 모르고 희생하는 소설'가시고기'의 아버지와 흡사하다.

주인공 조슈아처럼 4~6세쯤은 놀이와 상상이 풍부한 시기이다.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기 위한 낭비가 아니라, 아이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다. 놀이를 하면서 아이는 감정을 표현하고, 일상생활에서 배운 것을 흉내 내며 익히게 된다.

요즘은 아버지 역할에 대한 진지한 노력들이 많다. 대개 아버지들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점차 말수가 적어지고, 걱정하는 만큼 흰머리만 늘어난다고. 이런 무거운 심정의 아빠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아이의 놀이 파트너가 되어 아이의 언어로 함께 해 주는 것! 가장 좋은 아빠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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