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공공기관 '바겐세일'

정부의 공공기관 지방 이전 예정지 발표가 연기됐다. 당초 발표 예정일인 5월 말, 발표 대신에 국무총리와 12개 시'도 지사가 한자리에 모여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본협약'을 체결했다. 마치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형국이다. 유치전의 핵심이던 한국전력에 '1+2'라는 옵션을 걸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협약서는 한전을 유치하는 지자체에는 한전 자회사 2개만 달려 보내고 다른 기관은 일절 배정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지자체간의 치열한 경합과 정치권의 민감한 이해관계가 작용한 탓이지만 대구'경북 지역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한전은, 공공기관 이전 계획과는 별개로 원자력 발전의 절반 이상을 감당하고 있는 경북으로 옮긴다는 옵션을 채택할 수는 없었을까. 경북에는 전국 원자력 발전기 19기중 10기가 있고 앞으로 8기가 추가로 건설될 지역이다. 원자력 발전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서 한전을 지방으로 이전한다면 강력한 연고지라고 할 경북에 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묘한 옵션을 걸어 경북의 발목을 묶어버린 꼴이 돼 버렸다. 한전 이전을 방폐장 설치와 연계시키지 않겠다는 정부의 터무니없는 자만과 함께 이해하기 힘든 처사다.

그러나 정부를 탓하기 전에 지역의 노력을 짚어볼 일이다. 그동안 대구'경북의 공공기관 유치운동은 너무 '조용하게' 진행됐다. 지자체와 지역 정치권이 일을 하는지 안 하는지 조용하기만 하니 주민들도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나친 과열을 우려해서 뒤늦게 협약서를 체결하는 등 허둥대고 있지만 대구'경북이 과열의 주역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때문에 이 지역 정'관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지역의 이익을 위해 중앙정부에 대해 제대로 발언하고 있는지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일부 보도대로 광업진흥공사가 배정되는 결과가 나왔더라면 뭐라고 설명했을까. 노무현 정부의 편향성을 규탄한다며 뒷북이나 치고 노닥거렸을 것인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177개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분산한다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이다. 좋은 기관을 지역에 심는 일은 백년대계와 같다. 네거티브한 일에만 소리칠 일이 아니라 포지티브한 일을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민이 자리를 만들어 준 지역의 정'관 지도자들에게는 지역의 미래와 주민 복리가 걸려있는 공공기관 이전 문제를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막중한 봉사의 기회도 다시 없다.

한전 185억, 한국토지공사 171억 등 이전 대상 177개 공공기관이 지난해 납부한 지방세만도 모두 914억 원이고, 본사 인원 3만2천여 명에다 가족까지 포함하면 모두 10만 명이 지방으로 옮기는 등 공공기관 지방 이전으로 수조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경제적 효과뿐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심리적 상승 효과는 예상보다 훨씬 클 수도 있다.

공공기관 지방 분산은 행정도시 건설과 함께 중앙집권식 체제와 수도권 중심 관행의 해체를 가속화할 것이다. 그리고 고착화된 지역감정을 해소하는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전국 각지의 사람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기회라곤 서울과 군대 생활 밖에 없는 기존의 상황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규모 크고 경제적 파급효과가 큰 기관을 챙기고, 작지만 지역에 적합한 내실 있는 기관을 당겨와야 한다. 세수가 많은들 주민 친화적 요소가 거의 없다면 좋은 기관이라 할 수 없다. 경제효과는 작지만 지역의 답답한 현실을 호전시킬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을 내장한 기관이 필요하다. 예컨대, 영화진흥위원회'영상물등급위원회 같은 기관은 어떤가. 영상홍보원'문화예술진흥원'문화콘텐츠진흥원'프로그램심의조정위원회도 괜찮지 않을까. 보수적이고 칙칙한 지역 풍토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그런 기관이 절실하다.

또, 경찰대학'법무연수원'중앙공무원교육원은 어떤가. 전국의 엘리트 공직자들이 이 지역과 인연을 맺고 애정을 갖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없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그밖에 대한적십자사 등 성격을 달리하는 좋은 기관들도 널려 있다. 정부가 바겐세일을 하듯 일거에 내놓은 공공기관 177개 중 잘만 고르면 숨겨진 저가 우량주처럼 대박을 낳을 기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기관 유치는 지역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절대 필요하다. 그러지 못하다면 아주 3류 지자체로 전락하는 비운을 맞게될지도 모른다. 공공기관 지방 분산이 국가적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정부의 엄정한 판단이 전제돼야 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의 자의적 바겐세일로 끝나게 되면 국가적 불행이 될 것이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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