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노동 귀족'

몇 달 전 양대 노총의 대의원대회가 열렸던 영등포 구민회관 주변에는 검은색 대형 승용차가 줄을 이었다. 노조 간부들이 타고 온 회사 제공 업무용 차량이 대부분이었다. 노조간부가 회사 차 뒷자리에 앉은 모습은 권익 차원에서 볼썽사나운 일만은 아니다. 노조 간부에 대한 예우가 결국 조합원의 권익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급차를 타는 등 각종 혜택이 당연한 특권인양 여겨지는 풍토가 노조를 병들게 한다.

◇ 얼마 전 수배 중인 노총 간부를 검거하기 위해 현직 간부들 뒤를 따라갔던 수사관의 발길이 멈춘 곳은 고급 술집이었다는 후일담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도피 자금으로 전달될 것으로 여겼던 뭉칫돈이 결국 몇몇 간부들의 비싼 술값이었다는 사실에 수사관들이 절망했다고 한다. 낮에는 단체 조끼를 입고 머리에 띠 두른 채 목소리를 높이고 밤이면 고급차를 타고 고급 술집에 드나드는 간부가 많기야 할까만 '노동 귀족'이란 말을 실감나게 한 사례다.

◇ 한국노총 간부들의 리베이트 수수 등 비리를 쏟아냈던 여의도 중앙근로자복지센터가 지난달 31일 준공검사를 마쳤다. 지상 15층 지하 6층 규모의 최신 오피스 빌딩으로 정부 지원금 334억 원을 비롯 총 공사비 600억 원이 들어간 '한국노총 59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이다. 지난 2003년 1월 착공된 건물로 95만 조합원을 대표하는 본부와 산하 연맹사무실'예식장'스포츠센터 등이 입주한다.

◇ 복지센터가 준공 검사를 마친 날 한국노총은 조직 혁신안을 확정했다. 외부감사제 도입, 임원 입후보자 재산공개 등 내부 투명성을 확충하기 위한 자구노력의 일환이다. 스스로 혁명적이라 할만치 혁신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제도 개선에 앞서 인적 청산이 우선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선출직 간부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가 3선 이상인 상태에서 제도 개선만으론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지적이다.

◇ 크고 화려한 위용을 뽐내는 한국근로자복지센터는 이제 얼마 안가 새 주인을 맞는다. 새 집에 들어갈 때면 누구나 오래되고 쓸 곳 없는 가재도구를 버리고 새 단장을 한다. 새 건물에 입주하는 한국노총도 낡고 망가진 구태를 깨끗이 털어내야 한다. 그래서 추락한 한국노총의 위상을 다시 끌어 올려야 하리라.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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