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동)한국에도 피라미드가 있다(?)

안동시 북후면과 의성군 안평면에는 똑같은 이름을 쓰고 있는 마을이 있다. 바로 석탑리. 찬란한 신라 불교문화와 유교문화의 꽃을 피운 경북지역에 석탑 있는 마을이 어디 이 두 마을뿐이랴만 이곳의 석탑들은 독특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파라오의 영생을 빌던 이집트 피라미드와도 흡사한 이 돌탑들은 경남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의 전(傳) 구형(九衡)왕릉과 함께 국내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특수형 석탑. 더욱이 일본 오카야마현과 나라시에 있는 방단탑(方檀塔)과도 유사해 고대 불교문화의 또 따른 특색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안동시 북후면 석탑리 구억마을 초입에는 주변 학가산과 조골산을 병풍 삼아 두른 범상치 않은 돌탑이 서 있다. 작은 집채만한 크기에 모양도 이채로워 단번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내판에 적힌 이 탑의 이름은 '안동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3호). 이름은 그렇다 해도 외형은 영락없는 피라미드다.

일부 학자들은 이 돌탑을 한반도의 중남부에서 가장 온전한 상태를 보전하고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로 보고 있다. 즉 사람의 무덤(塚)인 셈이다. 가로, 세로 약 13m 크기의 맨 아래 기단에서 크기와 높이를 줄여가며 계단식으로 6단을 쌓았다. 높이는 대략 4.5m 정도. 석탑을 이룬 돌은 세치에서 세자까지 각양각색이지만 시루떡 얹어놓은 듯 용하게도 수평이 되게 꿰맞춰져 있다.

고려시대에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학계의 추정대로라면 이 돌탑의 나이는 1천 살에 가깝다. 주변 자연석을 깨어 탑을 쌓은 것으로 보이지만 오랜 풍상에 닳아 모난 것이 없다. 색깔은 군데군데 이끼가 덮인 데다 변색과 탈색이 거듭돼 마치 천년고찰 고승의 부도와 흡사하다. 탑 20m 서북편에는 석탑사가 돌탑 지킴이로 오롯이 지켜 서 있다.

이렇듯 탑은 아주 진귀한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지만 언제,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가설과 전설만 전해질 뿐 아무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 가운데 하나. 마을 토박이 이영희(73) 할머니가 자신의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얘기에 따르면 돌탑은 먼 옛날 200리 떨어진 영주 부석사의 스님들이 이곳을 찾은 뒤 생겼다. 매일 자신들의 공양(供養) 밥 일부를 훔쳐간 범인이 신통수를 부리는 학가산의 능인(能仁) 대사라는 것을 안 스님들이 그를 죽이려고 돌을 들고 떼지어 찾아왔으나 오히려 능인 대사가 설법을 하며 꾸짖자 금세 깨닫고 속죄의 표시로 가지고 온 돌을 모아 탑을 쌓았다는 것.

또 돌탑과 인근 석탑과의 관련성은 탑의 축조 당시와 연관된 유물이 발견되지 않은 점 등으로 그 기준을 설정하기는 어렵고 다만 탑의 치수가 비교적 정연성을 갖고 있어 조선시대 민간신앙(성황당)과 관련돼 축조된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의성읍에서 지방도 912선을 타고 안평면 소재지 방향으로 8Km 정도 가다 보면 우측에 석탑1리를 가리키는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부터 개울 옆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3km쯤 안으로 들어가면 일명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돌무지 무덤이 야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방단형 석탑(方檀形 石塔)으로 현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0호로 지정돼 있는 이 돌무지 무덤은 전체적인 구조나 외형이 석탑의 형체처럼 계단식으로 축소해가는 다층석탑형으로 축대를 제외하면 남쪽과 동쪽은 각각 6층이며, 서쪽은 하단층이 매몰돼 5층만 드러나 있다. 또 이 탑은 동서남북 사면(四面)을 정확하게 가리키고 있으며 각 면 2층 중앙에는 불상을 모시는 감실(龕室)이 있다.

게다가 이 돌무지 무덤은 안동 피라미드에서 직선거리 약 37km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관련학계에서는 안동 피라미드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축조연대 등은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다만, 안동 피라미드와 다른 점은 이 돌무지 무덤 사방에 감실을 만들어 조그만 석불을 안치했는데 현재는 동쪽과 남쪽의 감실에만 남아 있으며, 북쪽의 감실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돌부처의 크기는 높이 85cm, 너비 45cm 정도이며 두께가 30cm 정도의 길죽한 타원형의 돌을 깎아 가부좌하고 있는 부처를 부조하였으며 동쪽 감실의 부처 하단에는 다섯 갈래의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석탑1리 장종수(50) 이장은 "동, 서, 남쪽의 감실 안에 모양과 크기가 비슷한 석불이 있었으나 서쪽 감실 안의 석불은 27년 전에 사라졌는데 도굴당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서쪽 산기슭에는 아직 절의 흔적이 남아있으나 사자상과 돌독, 돌장구 등은 사라졌다"고 안타까워 했다.

석탑1리 마을에는 옛날부터 돌무지 무덤과 관련해 전해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75km 떨어진 합천 해인사에 불이 났는데 인근 암자의 스님이 돌무지 무덤 옆 정화수(井華水)를 적신 솔가지를 들고 주문을 외우며 물을 뿌리자 불이 꺼졌으며 이후 해인사 신도들이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암자의 스님을 찾아오면서 석탑을 쌓았다는 이야기다.

안동·정경구기자 jkgoo@imaeil.com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사진:서쪽에서 바라본 의성군 안평면 석탑리의 돌무지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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