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극장전

무작정 대드는 수컷본능

수컷의 눈은 늘 섹스에 초점이 맞춰진다. 처음 만나도 참 오랫동안 만나 섹스를 나눈 것처럼 상상하는 것이 수컷이다.

"인류의 미래가 어떻게 될까요? 이래서는 안되거든요". 이런 '짓거리'는 '당신과 저의 오늘 밤은 어떨까요? 빨리 어디 들어가고 싶거든요'의 강력한 바람이다.

한국 영화의 뉴 스타일리스트 홍상수 감독이 이런 수컷의 본성에 카메라를 들이댄 것은 잘 한 일이다. 왜냐면 이런 수컷들은 틀림없이 허점투성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허점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의 세상은 수컷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사주(창조주)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효율이 떨어지는 사원(인간)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고추'만 달리면 대우가 달라진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다리를 떡하니 벌리고 '유세'하는 수컷을 보면 "이런 하자 있는 제품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홍상수의 영화 6편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인공은 '함 하자'고 대드는 수컷의 본능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부터 최근작 '극장전'까지 남자 주인공의 이미지는 불끈 선 '그놈'의 표상과 똑 같다.

'극장전'의 동수(김상경)는 암으로 죽어가는 선배 감독의 회고전에서 막 단편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선다. 그도 감독 지망생이지만, 뭐 하나 제대로 만든 것이 없다. 극장 앞에서 영화 속 여주인공 최영실(엄지원)을 만난다.

신비스런 여인이다. 선배의 애인일까. 접근한다. 그의 머리 속에는 방금 본 영화 속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섹스를 나누는 한 여인을 떠올린다. 나는 안 될까?

태생적으로 '함 하고픈' 수컷에게는 염치가 없다. 어떤 포즈도 다 취한다. 그는 애원을 하거나, 불쌍한 척 표정을 짓고, 선배를 들먹이며 영화를 얘기하면서 영실에게 '문'을 열도록 종용한다.

희한한 것이 그러면 그 문이 다 열린다는 것이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이 또한 홍상수 영화의 교훈이다.

"그거 원래 저 얘기예요". 간신이 영실을 꼬셔 술을 마시며 수컷은 선배의 단편 영화 속 이야기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동서고금 수컷들의 '물귀신'식 저열한 수작. '잘 된 놈에게 묻어가기'.

원래 자기 이야기이니까 자신도 영실과 섹스를 할 이유가 있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삼국지'의 유비가 그랬고, '초한지'의 유방이 그랬다. '에~ 가설라무네, 사돈에 팔촌에~ 이런 저런 피가 섞였느니 천하는 내가 접수하는 것이~'.

그래서 영실은 동수에게 접수된다. 간혹 세상이 원망스럽지 않은가. 왜 여자는 모든 '찌질이'에게 힘을 쓰지 못할까. 왜 천하는 '역발산 기개세' 명장 항우를 외면하고 '찌질이' 유방에 안겼을까.

마지막에 답이 나온다. 계속된 '접수'를 위해 접근하는 동수에게 영실이 택시를 타며 한마디 던진다. "됐어. 잘 놀았잖아".

이 대사는 분명 명대사다. 우는 애에게 젖 물려주는 '심청전'의 박애정신이며, 늘 붕~ 떠서 남자를 발로 차는 트리니티('매트릭스')의 남성 상위적 습관이며, 버틀러를 선택한 타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후회막급이 여기서 나온다.

"오늘은 여기까지~". 가진 자의 여유. 그 사실만 알고, 그 사실만 자극하면 다 열리는 문. 그래서 천하는 늘 '찌질이'의 것이 된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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