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

이구열 지음/ 돌베개 펴냄

미술 역시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상황과 얽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근대미술은 정치상황과 맞물려 격동기를 겪어야 했다. 1900년대 초 전통 화풍과 전혀 다른 서양화가 도입되기 시작하고 일제 강점기가 36년이나 지속되면서 미술계도 몸살을 앓았다.

'우리 근대미술 뒷이야기'는 1세대 미술기자이자 미술평론가인 이구열 선생이 체험한 우리 근대미술의 비화들을 역사적 배경과 함께 현장감 있게 담아낸 미술 에세이다.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미술 1세대로서 근현대 미술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19세기까지 한국미술사에는 누드미술을 다룬 그림이나 조각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춘화를 은밀히 즐기긴 했지만 누드화는 없었다. 첫 누드화는 김관호가 1916년 도쿄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할 때 제출했던 '해질녘'이라고 알려졌다. 두 여인이 목욕하는 뒷모습을 담은 이 작품은 졸업작품 중 수석을 차지해 '매일신보'에 실리기도 했다. 하지만 '여인이 벌거벗은 그림인고로 사진을 게재치 못함'이란 사과문이 작품사진을 대신해야 했다.

조선왕조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이은(李垠'1897~1970)은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가게 되고 일본 왕족인 이방자(1901~1989)와 정략결혼을 강요당한다. 비운의 황태자는 미술작품 감상과 수집에 취미를 붙여 애환을 달래나갔다. 스위스를 여행하다 우연히 만난 화가 나혜석과 조우하는 장면도 실었다. 하지만 영친왕이 수집했던 수많은 작품들은 종전 이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두 도쿄 미술시장으로 팔려나가야 했다.

3'1운동 등 독립운동에도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했다. 1919년 3'1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천도교 측 대표였던 오세창과 최린은 서화 미술계의 원로와 중진이었고, 당시 순종황제 반신상을 그릴 정도로 초상화에 뛰어났던 김은호도 조선독립신문을 뿌리다가 수감됐다. 서양화가 나혜석과 도상봉도 3'1운동에 가담하는 등 미술인들의 독립운동도 활발했다.

혼돈의 시대가 계속되면서 미술품 역시 혼란스러운 시대의 물결에 휩싸였다.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작품이 흔적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반면 골방에 쳐박혀 있던 작품이 기적적으로 발견되기도 한다.

한국 최초의 화가 부부 임용련과 백남순은 비운을 겪어야 했다. 임용련은 6'25 당시 행방불명됐고 백남순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화단에서 잊힌 존재가 됐을 뿐 아니라 작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5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백남순의 친구 민영순이 오랫동안 보관하고 있던 작품을 내놓음으로써 극적으로 다시 재조명된다.

또 근대 민족미술 창달운동의 핵심적 역할을 했던 고희동의 자화상 두 점은 골방에 쳐박혀 있다가 아들이 우연히 짐꾸러미를 풀어보다 발견됐다. 또 이중섭의 은지화가 뉴욕 근대미술관에 소장돼 있게 된 경위를 취재한 뒷얘기도 소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상업화랑, 최초의 시사만화가 등 다양한 근대미술의 역사를 되짚어나간다.

근대사의 중요한 역사적 지점들과 그와 연계된 미술사적 사건들을 하나로 엮어 풀어내고 있어, 미술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등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 책은 당시 시대상황을 전해주는 잡지나 신문기사, 희귀 자료를 포함해 접하기 힘든 근현대 작가들의 주요 작품 170여 컷을 함께 볼 수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그림: 1916년 서양화가 김관호가 그린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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