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기획사인 '광고산방' 권수구(權樹久.50) 대표는 얼굴에 그늘이 없다. 생일이 지나지 않았다고 만 49세라고 우기는 그지만 그 나이이면 의례 있기 마련인 '주름'이나 '욕심'도 찾기 힘들다. 말도 소곤소곤 연인을 대하는 듯한다. 치열한 광고계에서 전투를 하듯 살아가는 사람같지 않다.
그는 그러나 실패의 쓰라림을 안다. 지난 92년 운영하던 회사의 문을 닫아야 했다. 국내 최초의 정치광고 대행사였던 (주)코마콤은 한때 그의 자랑이었다. 새샘모자 광고로 카피라이터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SCC 광고상을 받았고, 콩쥐바지 광고로 한국광고대상도 수상했으나 부질없는 기억이었다.
실패한 사람에게 쏟아지는 사회의 비정함. 돈이 없는데 따른 숱한 모멸감을 느껴야 했다. 한동안 아무런 일도 못하고 낚시만 다녔다.그러다 어느날 방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고 한다. 다시 시작하면 되는데 뭘 그리 고민하고 어렵게 생각하나 싶었다. 서울 상계동에서 경기도 의왕시로 집을 옮겼다. 평생 모시려했던 어머니를 형 집으로 보냈다.
그리고 93년 광고산방을 창립했다. 맨주먹으로 회사를 다시 일으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도 무척 힘들었다. 하지만 이젠 보람을 느낀다. 남들은 계속 어렵다고 하는데 회사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서다.
작은 회사지만 기동성을 갖고 고객을 VIP로 모실 수 있는 것이 광고산방의 경쟁력. 아름다운 광고가 아니라 철저하게 고객에게 이익을 주는 광고를 추구하고 있다. 직원 한사람 한사람이 우수해 고객과 첫 상담하는 자리에서 완성된 광고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자랑이다.
그는 어린시절 '왕자'였다. 아버지가 K2 공군기지 단장 등을 역임한 뒤 준장으로 예편한 고 권대유씨. 고인은 윤영탁(尹榮卓) 전 국회의원의 손위 처남이기도 하다. 유복했던 권 대표는 대구 교대부속초교를 졸업했고, 서울 휘문고 시절에는 문예부장으로 각종 행사의 사회도 곧잘 봐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무척 좋았다. 학교로 팬레터가 많이 날아들어 선생님들의 놀림도 받아야 했다.
"한번도 어려움 없이 살아왔던 탓에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막연하게 착한 삶이 고작이었겠죠."
그는 지명(知命)의 나이에 새로운 꿈을 꾼다. '사오정'이란 유행어가 있지만 퇴직한 광고쟁이를 모아 '실버 광고기획사'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예전에는 고객들에게 술접대를 하지 않았다.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골프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바뀌었다. 술도 자주 마시고 골프 연습장에도 나간다.
"건방진 말일지 모르지만 한번 실패한 것을 참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큰 과오없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으니까요."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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