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까지 군사훈련은 학교 정규과목이었다. 학생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총검술을 연습하고 제식훈련을 받았으며 북한 공산당을 무찌르자는 표어를 만들고 포스터를 그렸다. 지금도 학생들은 머리카락을 강제로 잘리고 정신교육을 받고 있다.
이 책은 우리 학교에 남아 있는 군사 문화의 기원을 역사적으로 추적해 들어간 결과물이다. 군사 문화의 기원은 놀랍게도 프랑스 대혁명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국민국가가 전쟁을 통해 형성되고 성장했듯이 국민교육도 예외는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국민교육이 태동한 순간부터 '국민 만들기'의 현장이었던 학교는 국가주의가 선동하는 전쟁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곳은 국가기관이었지만 그 전쟁심리를 복제 생산한 책임은 최종적으로 학교 교육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프랑스 대혁명 중 근대 공교육의 이상이 좌절되면서 군국주의적 국민교육이 탄생하게 된 배경에서 시작하여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강조한 1차대전기 유럽의 학교 교육, 2차대전기 파시즘 교육체제, 일제강점기의 황국신민화교육, 한국전쟁 이후의 반공교육 등을 차례로 짚어 나가면서 과거에 학교가 아이들에게 저지른 전쟁폭력의 범죄를 고발하고 있다.
해방 이후 미군정 하에서 급속한 탈(脫)문맹화가 이루어졌으나 그 수준은 비판적으로 이해할 능력이 없는 낮은 단계였다. 저자는 그러한 상태가 남북한에서 각각 '국민'과 '인민'으로 대표되는 상호 적대적 국가의식을 저항 없이 주입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했다고 지적한다. 문교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반공교육'으로 뚜렷하게 선회한 것은 전쟁이 끝난 1954년 무렵이다. 이때부터 미국은 은인의 나라이자 반공전선의 가장(家長)으로 북한은 포악한 강도이며 적대감과 증오심을 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지게 되었다.
주목할 것은 군사독재 시기 학교 풍경이 일제 태평양 전쟁시기 학교 모습과 거의 구별 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았다는 점이다. 군사독재시대와 일제강점기의 국민교육은 공통적으로 준(準) 전시상태의 통제와 규율을 통해 아이들에게 극도로 긴장된 퍼스낼리티와 함께 전체주의 사회 특유의 강한 남성상을 요구했다는 것. 2차대전 시기 독일과 그 점령지대 학교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러나 저자는 근대 공교육이 태어날 때부터 이런 괴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 혁명 당시 공교육을 제창한 혁명가들은 구체제 아래서 학교를 독점하고 있던 교회의 특권을 혐오하고 교육 기회를 전체 민중에게 확대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혁명은 이내 좌절되었고 새로 생긴 공립학교들은 역설적이게도 수도원, 교회의 전통적인 관습에 준하여 세워졌다. 학급담임제, 시간표, 아이들을 일사불란하게 감독할 수 있는 연령별 학급 편성 등이 모두 수도원의 규율에서 빌려온 것이다.
교회의 낡은 규율을 빌려 준공한 학교의 틀 안에는 신 대신 새로운 절대자로 국가가 군림하게 되었다. 학교는 역사와 국어수업을 통해 국민국가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애국심을 주입했다. 보불(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이후부터 식민지 정복 전쟁을 미화하고 조국을 위한 죽음을 절대화하는 수식어가 등장했다. 1차대전부터는 애국심이 학교교육의 최고 가치로 미화되었고 2차대전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파시즘 교육체제를 공고화했다. 히틀러는 아이들에게 제복을 입히고 군사조직으로 재편한 '히틀러유겐트'를 창설했다.
그러나 전시에 아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았고 폭격에 희생되거나 심지어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기도 했다. 아이들이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였던 것이다. 2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한 저자 이씨는 1980년대 반국가사상을 이유로 해직된 경력도 갖고 있다.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한때 아이들에게 빨갱이를 증오하라고 가르친 데 대한 죄의식과 부채의식 때문"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이경달기자 sara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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