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소를 주신 하나님과 도와 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제 잠 안자고 돈 벌어 북에 있는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오는 날만 남았습니다."
탈북 여성 허춘만(52)씨는 요즘 밤 늦도록 다림질을 하고 재봉틀을 돌리느라 정신 없다. 그래도 피로를 잊고 있다. 얼마 전 그렇게 꿈에서조차 그리던 세탁소를 갖게 됐기 때문.
포항시 북구 두호동 두호시장 내 '알곡세탁소'라는 이름의 5평 남짓한 조그만 세탁소이지만 허씨는 이곳에서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고 있다.
3남2녀의 자녀를 두었던 허씨가 큰 아들(현 24세)과 막내 아들(현 13세)을 북에 남겨둔 채 1999년 남편이 뇌출혈로 사망하자 막내딸(현 6세)을 임신한 채 중국으로 탈출했다. 큰딸과 둘째아들은 교통사고와 폐렴으로 이미 오래 전 세상을 등졌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세탁소,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로 생활하던 허씨는 지난해 7월 꿈에도 그리던 한국으로 입국, 정부의 탈북자 교육을 마치고 올해 1월 초 포항에 오게 된 것.
포항에 오게 된 동기에 대해 "정부 교육을 마친 뒤 '살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했지만 아는 곳이 있어야죠. 가만히 있으니 누군가 포항을 이야기 해 무턱대고 포항으로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포항에 내려온 허씨는 영구 임대아파트(12평)에 살면서 포항시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생활비를 보조받았다.
하지만 허씨가 세탁소를 갖게 된 결정적 계기는 한국여성가장희망센터 이미향 팀장의 도움이 컸다. 돈 대출문제로 우연히 포항창포사회복지관을 찾아 상의하던 중 이 팀장에게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했다. 허씨의 삶의 강한 의지를 읽은 이 팀장은 삼성생명이 사회봉사단 창단 10주년 기념사업으로 여성가장들에게 무상으로 창업자금(1천200만 원)을 지원한다는 정보를 입수, 허씨에게 신청을 하도록 했다.
삼성생명의 현지 방문 심사결과 허씨가 수혜자로 결정되었다. 마침내 지난달 26일 포항시 및 삼성생명, 대한적십자사 포항지부 관계자와 허씨가 다니는 교회 교우 등 그동안 허씨에게 도움을 준 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세탁소 개소식이 마련됐다.
아직 포항시내 구경도 못해 보았다는 허씨는 "도움을 준 분들에게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손님 마음에 들도록 성심성의껏 세탁하겠다"며 "6개월 동안은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는 기술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허씨는 북한에 두고 온 두 아들과 조카를 생각하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한 사람당 400만~500만 원만 있으면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남은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하는 게 마지막 남은 꿈"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세탁소 일 이외 창업 교육프로그램(소상공인지원센터), 직업성취 교육프로그램(고용안정센터)은 물론 운전면허시험도 준비 중이라며 밝은 표정을 보였다.
포항'임성남기자 snl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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