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희망편지-'약발'이야 듣건 말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모의평가가 지난 1일 치러졌다. 수험생들로선 실제 수능시험에서 어떤 문제가 출제될지, 교과서나 자신이 공부하는 참고서, 문제집 등에서 어느 부분이 중요하게 다뤄졌는지, 자신의 취약 부분은 어디인지 진단해 처방을 모색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다.

그러나 지난해 4월 EBS 수능강의가 시작된 이후 모의고사를 칠 때마다 모든 이들의 관심은 수능강의에서 얼마나 많은 문제가 출제됐느냐에 쏠리고 있다. 교과서의 기본 개념과 원리가 아무리 강조돼도, 다양한 유형의 문제풀이가 아무리 요구돼도, 일단은 수능강의 교재들부터 뒤적여보는 경향이 생겼다.

이번 모의평가에서도 EBS측은 75~80%가 출제됐다고 자신있게 밝혔다.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정책적으로 추진된 일인 만큼 평가원이나 교육부도 별 말이 없다. 교사들이나 학원 관계자들이 EBS 교재와의 연관성을 체감하기 힘들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수험생들은 결코 소홀히 하지 말라는 묵시적 경고로 보인다.

수험생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난 2월 고교를 졸업한 학생 3명이 인터넷 게시판이나 채팅, 수험생들의 대화 등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들을 모아 펴낸 '학교대사전'에서는 'EBS'란 단어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비호를 받고 있는 상업회사. 수능에 출제가 예상되는 문제를 독점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미워도 책을 살 수밖에 없게 만든다. 수능 문제가 EBS에서 많이 출제됐다고 하지만 EBS 교재의 방대한 분량을 생각하면 거기서 안 나오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학생들은 지난해와 6천 원이던 한 권의 수학책이 지금은 5천 원짜리 세 권이 됐다며 사진까지 싣고 있다.

EBS 수능강의가 시작된 이후 긍정적인 측면 이상으로 많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이에 교육부는 '단기 처방'일 뿐이라며 중'장기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년여가 지난 지금껏 학생들은 감기약, 몸살약만 되풀이해서 먹고 있다. 잔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초 체력을 높인다거나 건강에 좋은 식단으로 바꾸는 일은 적어도 내년에 수능시험을 쳐야 하는 학생들에게까진 전혀 시도되지 않고 있다.

EBS 수능강의의 '약발'이 적어도 2008학년도 이전 수험생들에겐 듣는다고 여기는 듯하다. 중'고생의 95% 이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으며 저소득층에 컴퓨터 통신비용을 지원하고 오지에 위성방송 수신 설비까지 지원했으니 교육의 기회 균등도 실현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하지만 인터넷과 위성방송을 통한 EBS 수능강의는 수험생들 사이의 정보 격차를 심화시켜 더 큰 불평등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고 있다. 정보 격차란 단순히 정보 매체와 서비스에 대한 소유나 접근 능력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이용과 만족도로 따져야 한다는 기본 상식에는 눈감은 모습이다.

2008학년도 이후 새 대입제도를 내놓은 교육부는 내신 비중 강화의 '약발'이 거의 먹히지 않고 오히려 부작용만 빚어내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다. 일단은 대학별 고사 강화라는 대안에 손들어 주고 있지만 '약발'이 먹힐 만한 또 다른 방법을 찾고 있음이 틀림없다. 더 딱한 건 아무 '약발'도 없는 약을 계속해서 먹어야 하는 현재 고교 2학년과 3학년생들은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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