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맛짱' 주부 이영미의 요리 세상-약고추장

나이를 먹는다고 철이 저절로 드는 건 아닌 모양이다. 연휴에 뭘 할까 들떠 있던 나는 남편의 한 마디에 부끄러웠다. "모처럼 연휴니까 어머니 모시고 바닷가에 가보자. 포항 가서 바다 구경도 하고 회 먹고 오는 길에 경주에도 들르고." 늘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도 못 하면서 연휴에 내 아이들 데리고 어디 가서 뭘 할까만 생각하다니.

'맞아, 어머니…. 어머니 놀러 다니시는 거 좋아하는데. 팔순이 훨씬 넘으셨으니 놀러 다니실 날도 얼마 남지 않으셨는데, 조금 있으면 기력이 떨어져 가시고 싶어도 못 가실 텐데….'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겨우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철이 덜 든 건지, 어쩔 수 없는 '나쁜 며느리'인 건지, 참나. 나이를 먹어도 헛먹었다는 게 이런 나를 두고 하는 말일게다.

죽도시장 구경을 하는 어머니는 마치 소녀같았다. 카메라에 담긴, 지팡이를 짚으시고 시장의 생선들을 구경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은 여든 중반이 아닌 십대 중반의 들뜬 소녀 같은, 무지 예쁜 모습이었다. 궁금한 것도 어찌나 많으신지. 어머니의 끊임없는 질문에 여행이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시각으로 보는 세상은 색다르고 그래서 재미있고 신선했다.

"바닷물은 왜 가만 있지 않고 일렁일렁하냐? 올 때마다 궁금했어." 과학 선생도 이럴 때는 정말 쓸모라곤 하나도 없다. 내가 설명하는 말을 어머니가 알아들으시질 못하니 나는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엉터리 선생이다.

'그래 가지고 어머니가 알아들으시겠냐?'며 조근조근 쉬운 말로 설명을 하는 남편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어머니. 그런 남편을 보며 '효자는 타고 난다'는 말이 생각났다. 한때는 '효자 남편' 때문에 속이 상한 적도 있었다. 지금보다 더 철이 없었던 새댁 시절에는 많이 속상했었는데 지금은 '효자 아들'일 때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늘 보며 자라서인지 우리 집 두 아이 또한 저절로 '효녀'이니 난 참 복도 많은 사람이다. 복에 겨운 며느리가 준비한 저녁이라곤 회를 뜨고 얻어 온 생선머리와 뼈로 끓인 매운탕과 채소쌈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염치없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어머니 저는 상추보다 쑥갓이 더 좋아요. 상추만 심지 말고 쑥갓도 심어주세요."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미소를 한가득 머금고 어머니는 흔쾌히 대답해주신다. "그래, 그래. 쑥갓 씨도 뿌리마."

쑥갓에 따뜻한 밥 한 숟가락, 약고추장 얹은 쌈을 입에 넣을 생각을 하니, 철은 없으니 복에 겨운 며느리는 벌써부터 행복하기만 하다.

칼럼니스트'경북여정보고 교사 rhea84@hanmail.net

◇재료=고추장 1컵, 소고기 다진 것 100g, 배즙 1/2컵, 꿀 1큰술, 참기름 1큰술, 잣 2큰술, 소고기양념장(간장 1큰술, 다진파 1큰술, 다진마늘 1/2작은술, 참기름 1큰술, 깨소금 1/2큰술, 후춧가루 약간)

◇만들기=①소고기는 준비한 양념에 버무려둔다. ②달구어진 프라이팬에 양념한 소고기를 볶다가 고추장과 배즙을 넣고 볶는다. ③배즙의 국물이 거의 졸아들면 꿀, 참기름, 잣을 넣고 다시 한 번 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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