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2년 전, 내가 중학교 1학년 때인 어느 날. 아빠는 처음으로 우리 4남매에게 자장면을 사줬다.
"어서 먹고 나가 놀아라."
나는 친절한 아빠가 너무 이상해서 안방 앞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술에 취한 아빠가 호통을 쳤다. 놀이터에서 동생들과 그네를 타고 있을 때 119 구급차가 우리 집 앞에 섰다. 설마. 아빠는 엄마에게 억지로 독극물을 먹이고 자신도 같이 들이켰다고 한다.
난 내 부모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 때 아빠와 같이 응급실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엄마, 이혼해도 돼. 우리는 괜찮아."라고 말했을 뿐.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엄마는 링거를 단 채 떠났다. 아빠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이 그렇게도 지옥이었을까. 입술이며 식도가 다 타들어간 엄마의 모습일지라도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우리 아빤 알코올 중독이다. 당뇨에 고혈압, 신부전증까지 앓고 있지만 여전히 술을 마신다. 우리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월 40여만 원을 지원받는 것도, 우리 남매의 공납금 일부가 지원되었다는 사실도 얼마 전 알게 됐다. 아빠는 우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엄마는 늘 멍들고, 옷이 찢어진 채로 우릴 재웠다. 아빠의 손찌검은 점점 정도를 더해갔지만 우리 중 누구 하나도 대들지 못했다. 난 저 멀리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로도 아빠가 취한 정도를 알 정도로 늘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빤 엄마랑 헤어진 후에도 엄마가 다니는 공장에 찾아가 불을 낼 정도로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나는 다발성증후군이다. 투병한 지 벌써 9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주일 간 토했다가 위궤양으로 입원한 이후부터 내 병원생활은 시작됐다. 다발성증후군은 시신경을 마비시킨다는데 내 눈동자는 제 위치를 찾지 못한다. 내 오른쪽 눈은 실명됐고, 왼쪽 눈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난 오줌줄을 꼽고 기저귀도 차고 있다. 걸을 수 없다는 두려움보다 보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가슴 아프다. 내 사랑하는 동생들을 온전히 볼 수 없다는 상상이 하루 종일 날 괴롭힌다.
두 동생은 상경했다. 대학생이 됐는데 둘 다 참 바쁜 것 같다. 이제 고2인 막내도 서울로 보내고 싶다. 엄마도 없는 집 안에서 아빠와 함께 있을 운명은 내 몫이다.
내 사연이 이렇게 까발려지는 것이 싫다. 하지만 난 오늘 하루만은 솔직해지고 싶다. '저주받은 운명'이라고 자책하던 날들, 열이 40℃ 일 땐 으레 '죽어야지, 이대로 죽어야지'했던 내 지난 날이 너무 서럽다. 내 나이 스물 다섯, 평생 치료를 받아야만 살수 있다는 현실에 몸서리가 처진다.
난 남 앞에서 울지 않는다. 어느 날 의사선생님이 "오른쪽 눈은 죽었고, 왼쪽 눈은 서서히…"라고 했을 때 처음으로 펑펑 울었다. 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희망을 잃지 않겠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은 보일거야'라며 빌려온 책을 펼쳐든다. 동생들에게 '찌개'를 끓인 아침을 먹이고 싶고, 내 두 다리로 운전하고 싶다. 그리고 내 두 다리로 일어섰을 땐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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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사진: 이희진(가명·25·여)씨는 '물소리가 참 좋네요'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박노익기자 noi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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