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청동의 북카페에서 만난 김상경. 두꺼운 책을 읽고 있었다. 세로로 글쓰기가 된 빛바랜 책.
"오래된 책 냄새가 참 좋아요."
'근래 보기 드문 지적인 캐릭터군' 고개를 끄떡이려는 순간, 다음 멘트가 허를 찌른다.
"베개 대용으로도 좋고. 베고 있으면 잠도 잘 와요. "
엇박자 유머가 초장부터 사람을 제압한다. 영화 '극장전'(감독 홍상수)처럼.
2005년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 받았던 '극장전'은 선배 감독의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영화 속 여주인공(엄지원)을 우연히 만난 동수(김상경)가 그녀를 쫓아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홍상수 감독과는 '생활의 발견'에 이어 두번째 호흡이다. 영화 개봉 이후에도 서로 전화를 주고 받고 술자리를 가질 정도로 찰떡 궁합. 그러나 한달여의 촬영 기간 내내 두통약을 달고 다녔다.
사전에 완성된 콘티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촬영을 하는 홍감독의 스타일은 대단한 순발력을 요구한다. 더욱이 디렉션도 결코 친절하지 않다. '저 하늘의 파란 구름처럼 연기해봐' '바람이 부는 듯한 느낌을 더해봐'라는 식이란다.
"홍감독도 초장엔 일부러 NG를 계속 외쳤다고 하더군요. 좀 더 새로운 걸 찾아내기 위한 과정이었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변화를 주기가 결코 쉽지 않더군요."
고민끝에 김상경이 만들어낸 동수란 인물은 엉뚱하면서 웃긴다. 그리고 새롭다.
동수는 10년차 백수에 생각없이 사는(진짜 무뇌아 수준이다) 남자다. 친구 딸에게 목도리를 벗어주었다가 친구의 말 한마디에 삐쳐서 억지로 다시 빼앗고, 선배 병원비를 모금하는 자리에선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뻔뻔하게 둘러댄다.
홍감독의 영화 속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동수는 탐욕과 위선, 부조리함을 지고 있지만 지식인 특유의 냉소적인 태도, 강한 자의식은 없다. 부끄러움도 느낄 줄 모르는 그가 생뚱맞게 내뱉는 대사들은 관객들의 허를 찌르면서 폭소탄을 터뜨린다. 그 스스로 최고의 대사라 생각한다는 "제가 심장이 고장난 것 같습니다"(엄지원에게 작업을 할 때 하는 말) 등은 유행어 조짐을 보이고, '동수스럽다'는 말까지도 나오고 있다. 이전 홍감독의 영화들이 씁쓸한 소주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면, 이 귀여운 동수란 인물은 시원한 맥주 한잔과 어울린다는 평.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유치한 캐릭터가 영화 보는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그렇다면 김상경의 주량은? 기분에 따라 편차가 크다는 설명이다. 소주 반병이면 일단 기분이 좋아지고, 친한 사람과는 무한대로 마실 수 있다. 술 자리에선 절대 공들여 구두 끈을 매지 않는 스타일. 지난달 카드 사용 내역서를 보니, 요식업이 가장 높고 문화생활은 바닥을 차지하고 있었단다.
한번쯤은 소줏잔을 함께 기울이며 인생을 논해보고 싶은 이 멋진 배우, 차기작은 MBC TV '변호사'란다. 스포츠조선 전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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